SK매직의 올인원플러스 직수 얼음정수기./SK매직 제공

코웨이와 청호나이스의 얼음정수기 특허 분쟁이 9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SK매직도 최근 쿠쿠홈시스를 상대로 얼음정수기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정수기 시장을 놓고 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쟁사의 기술침해를 경고하는 한편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수기를 구성하는 기능이나 디자인의 차별화가 어려운 것도 다툼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정수기 시장에서는 코웨이가 40%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LG전자(18%), SK매직(13%), 쿠쿠홈시스(13%)가 뒤를 이었다.

◇ SK매직vs쿠쿠홈시스, 또 다시 시작된 얼음정수기 특허 전쟁

19일 업계에 따르면 SK매직은 지난 1일 쿠쿠홈시스에 대한 특허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 SK매직은 얼음정수기에 4-웨이 밸브를 적용해 정수기를 소형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기술을 쿠쿠홈시스가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SK매직은 쿠쿠홈시스의 ‘인앤아웃 아이스 10′S’ 정수기와 ‘제로 100S 끓인물 냉온정 얼음정수기’에 자사 기술이 적용됐다고 보고 있다.

해당 기술은 히터로 제빙봉을 가열해 탈빙(얼음을 떨어뜨리는 것)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냉매의 열만 이용하는 게 특징이다. 히터를 제품에 탑재하지 않아도 되기에 정수기를 작게 만들 수 있고 소음 발생도 줄일 수 있다. SK매직은 2018년 2월 출시한 올인원 직수정수기에 이 기술을 처음 적용했다. 이후 2020년에 출시된 쿠쿠홈시스의 제품에 유사한 기술이 탑재된 것으로 SK매직은 보고 있다.

두 업체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쿠쿠홈시스 측은 “SK매직의 기술은 액체 상태의 냉매를 탈빙에 사용하기에, 기체 냉매를 사용하는 쿠쿠홈시스의 기술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반면 SK매직은 히터 없이 탈빙을 하는 기능이 핵심이기에, 냉매가 액체인지 기체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쿠쿠홈시스의 인앤아웃 아이스 10′S. /쿠쿠홈시스 제공

얼음정수기를 둘러싼 기업 간 소송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청호나이스는 코웨이가 얼음정수기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청호나이스는 ‘증발기로 제빙과 동시에 냉수를 얻을 수 있는 냉온정수시스템 및 장치’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코웨이가 비슷한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다는 이유에서다.

2015년 1심에서는 청호나이스가 승소했으나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당시 법원은 미리 만든 냉수를 제빙 원수로 사용하는 것을 청호나이스의 핵심 기술로 인정했다. 그러나 코웨이는 냉수를 미리 만드는 방식이 아니기에 코웨이의 특허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청호나이스가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 정수기 디자인도 법적 공방으로 번져

정수기 업체들은 기술 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두고도 법적 공방을 벌여왔다. 2017년 바디프랜드 임직원 200여명은 자사 제품인 ‘W 정수기’ 제품을 교원그룹이 모방했다며 항의 집회를 벌였다. W 정수기는 전문 기사의 관리 없이 사용자가 직접 필터를 교체할 수 있는 정수기다. 바디프랜드는 이 제품을 통해 방문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인건비를 줄여 월 최저 1만4900원이라는 저렴한 렌털료를 구현할 수 있었다. 당시 바디프랜드는 교원그룹이 W 정수기와 동일한 디자인이 적용된 ‘교원 웰스 미니S 정수기’를 출시했다며 항의했다. 이에 교원그룹은 이 디자인을 개발한 ‘피코그램’과 정당한 계약을 체결하고 제품을 출시한 만큼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3년에는 코웨이와 동양매직(현 SK매직)이 정수기 디자인을 두고 법원에서 다퉜다. 코웨이는 동양매직 ‘나노미니 정수기’가 코웨이의 ‘한뼘 정수기’의 디자인을 도용했다며 법원에 디자인 침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시 코웨이는 한뼘정수기 중앙부에 디귿(ㄷ)자 모양으로 파인 디자인을 동양매직이 나노미니에 무단으로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코웨이는 작동 버튼이나 전체적인 디자인도 침해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은 동양매직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정수기 업계 법적 공방 잦은 이유… “제품 차별화 어려워”

정수기 업계가 유독 소송전에 자주 휘말리는 이유는 제품의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뛰어난 정수 능력을 갖추더라도 소비자들이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기에, 제품 소형화나 얼음 제조 등 눈에 보이는 특화 기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체 간 점유율 차이가 크지 않기에 인기 제품을 출시하는 것만으로 시장 판도를 뒤바꿀 수 있다. 때문에 타사의 기술 침해나 디자인 모방 등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정수기 업계에서는 실제 기술 침해가 이뤄졌는지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정수기 업체 관계자는 “경쟁이 워낙 심한 분야이다 보니 업체들이 특허를 내는 빈도도 높다”며 “이 과정에서 법적 공방이 발생하며, 실제로 기술 침해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판가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