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팹(공장) 내부. /삼성전자 제공

인력난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골몰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장비·설계기업들이 고급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산학협력과 연구개발(R&D) 과정을 연동시키는 한편 경력단절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회사 프로젝트 참여 문턱을 대폭 낮추는 등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업체 중 하나인 케이던스는 산학협력 수준을 넘어 대학교 커리큘럼에 자사의 제품 개발 과정을 포함, R&D가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R&D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도 낮춰 특정한 학위나 자격이 없어도 케이던스의 제품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케이던스 관계자는 “케이던스의 파트너 중 한 명은 겨우 열두살에 불과한 나이의 영재도 있다”며 “지크 휠러라는 이름의 열두살 학생은 케이던스의 툴을 활용해 국제 우주정거장과 통신할 수 있는 안테나를 개발했고 케이던스는 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설계자동화(EDA) 기업인 시높시스는 경력이 단절된 엔지니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리턴십(Returnship)’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각사의 여성들을 수개월간의 교육을 거쳐 완전히 고용하는 방식으로 고급 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멘스의 경우 반도체 교육과정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동원하고 나섰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을 말한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 모의시험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지멘스는 반도체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을 효율적·실증적으로 교육하고 케이스 스터디를 위해 교육용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교육 효과를 높였다.

반도체 인재 전쟁에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뛰어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서명한 ‘반도체 산업 육성법’은 527억달러(약 72조409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으로, 연구개발과 인력 확보에 132억달러(약 18조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국내 반도체 인력은 2020년 기준 17만7800명 수준으로, 매년 고졸부터 석·박사급까지 1600여명(산업통상자원부 집계)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인력을 올해 6만8121명으로 10년 새 2.3배 늘렸지만 국내 업계는 여전히 인력 갈증을 느끼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입사가 보장된 반도체 계약학과조차 정시 등록포기율이 모집인원 대비 1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계약학과를 합격하고도 의대, 한의대, 치대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직접 고급 인력 모시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해 국내 7개 대학에서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오는 2029년까지 매년 450명의 반도체 전문 인력을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계약학과는 졸업 후 삼성전자 채용을 조건으로 입학생을 모집하는 학부 과정이다. SK하이닉스도 고려대·서강대·한양대와 손잡고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지난달 용인특례시와 ‘용인 반도체 마이스터고등학교 지정·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양사는 협약에 따라 반도체 마이스터고 지정과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과정 개발, 온라인 교육 과정, 교사의 온오프라인 직무 기술지도 지원, 학생들의 교육 실습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중장기적으로 70여개의 공장에 새로 지어지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으며, 인텔, 마이크론 등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서 인재를 영입하기도 한다”며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력 쟁탈전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