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선보인 ‘챗GPT’가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AI 툴(도구)이 쏟아지고 빅테크 기업들도 일제히 경쟁 서비스·제품 출시에 나서고 있다. 조선비즈는 챗GPT의 본고장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AI 골드러시’의 주인공들과 함께 생생한 혁명의 무대를 소개한다.[편집자주]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일즈포스 본사 61층 '오하나 플로어'에 설치된 아인슈타인을 형상화한 조형물. 기업용 생성형 AI 서비스 '아인슈타인GPT'의 성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샌프란시스코=이소연 기자

지난 3월 28일(현지시각) 오후 1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심가 유니온스퀘어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오벨리스크 형태의 61층짜리 유리 건물 ‘세일즈포스 타워’가 우뚝 솟아 있었다. 330m 높이의 이 건물은 시가총액이 1983억7000만달러(약 266조원, 4월 30일 기준)로 전 세계 IT 기업 중 15위인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업체 세일즈포스의 본사다.

건물 꼭대기층은 하와이말로 ‘가족’이라는 의미의 ‘오하나(Ohana)’라는 이름이 붙었다. 직원은 물론 고객사, 방문객이 모두 가족과 같다는 세일즈포스의 철학이 담겼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오하나 플로어에 들어서자 홀 중앙에 어깨 높이의 백발에 두툼한 콧수염을 기른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조형물이 서 있었다. 세일즈포스가 올해 3월 내놓은 똑똑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아인슈타인 GPT’를 형상화한 것이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최고경영자(CEO)는 “세일즈포스는 아인슈타인GPT를 통해 고객사에게 AI의 미래로 가는 또 다른 문을 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세일즈포스가 전 세계적인 챗GPT 열풍의 근원지 샌프란시스코 최고층 건물 정상에 아인슈타인 캐릭터를 세웠다는 것은 이 회사가 얼마나 아인슈타인GPT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일즈포스는 2016년 아인슈타인 유족에게 ‘아인슈타인’ 브랜드 이용권을 사들이면서까지 공을 들였다. 이날 오하나 플로어에서 만난 세일즈포스 관계자는 “아인슈타인GPT의 성공을 세일즈포스 전 직원이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픈AI가 챗GPT를 활용해 출시한 B2B 서비스./오픈AI 웹사이트 캡쳐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기업용 AI 서비스가 세상 바꿀 것”

IT업계에서는 오픈AI가 촉발한 챗GPT의 승부처가 결국 기업용(B2B)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본다. AI 스타트업 코히어의 창업자인 에이든 고메즈 CEO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생성형 AI 서비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챗GPT가 무료 서비스로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면 기업들은 스타트업과 빅테크 기업들이 선보인 생성형 AI 서비스를 업무에 활용해 직원들의 단순 작업량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지금보다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필요한데,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발빠른 B2B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인터넷 공룡으로 거듭난 구글 역시 무료 검색서비스로 이용자를 모은 뒤 광고 수익을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3월 B2B 전용 상품인 ‘챗GPT 응용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출시했다. API 사용료는 약 750단어당 0.002달러(2.68원)인데, 챗GPT 월간 활성 이용자수(1억명) 중 1%만 기업 고객으로 확보한다고 가정하면 API 매출이 한 달에 200만달러(약 26억8000만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0%를 기업 고객으로 채울 경우 연간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 오픈AI는 지난달 25일에는 보안을 강화한 ‘챗GPT 비즈니스’를 출시하면서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텍스트 기반 생성형 AI 스타트업 재스퍼는 유료 B2B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재스퍼는 오픈AI의 GPT-3 언어 모델을 활용해 기업들의 제품 광고 문구나 소셜미디어(SNS) 게시글 등을 작성해준다. 기업 또는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월 5만 단어 기준 49달러(약 6만5000원)의 구독료를 받고 있는데, 최근 유료 회원 수가 10만명을 돌파했다. 단순 계산해도 연 매출이 최소 6000만달러(약 800억원)를 뛰어넘은 것이다. 2021년 1월 설립된 회사가 한 달 만에 서비스를 내고 약 2년 만에 이 정도의 실적을 낸다는 것은 이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폭발적인 성장을 보일지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재스퍼의 경쟁력은 기업들에게 단순히 문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잘 노출되는 문구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데이브 로겐모저 재스퍼 최고경영자(CEO)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챗GPT를 활용한 서비스를 어떤 기업이 원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재스퍼는 그런 기업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로겐모저 CEO는 미국 캔사스주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수차례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작년 10월 재스퍼를 기억가치 15억달러(약 2조원)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 기업) 반열에 올렸다.

세일즈포스GPT에서 인공지능이 고객과의 채팅 내용에 적합한 답변을 작성하고 있다./세일즈포스 제공

◇2030년엔 블록버스터 영화 90%가 생성형 AI로 제작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마이클 추 파트너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람을 보조하는 기술에 머물렀던 AI가 생성형으로 발전하면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시간을 단축시켰고, 전문지식이 없는 회사원들의 실력도 향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AI 스타트업 코히어가 지난 2021년 말 출시한 API ‘제너레이트’는 기업들이 이메일 등을 작성하는데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신발 쇼핑앱 운영자가 제너레이트를 이용해 “흥미로운 광고 문구 하나 만들어줘”라고 명령하면, “당신이 걸어가는 모든 길마다 당신의 목소리를 남기세요”와 같은 문구가 만들어진다. AI를 전혀 모르는 기업이나 개인 사업가가 사업 운영 과정에서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역시 코히어와 협업, 모바일 앱 내에서 노래, 앨범, 가수, 플레이리스트, 팟캐스트 등을 검색하는 ‘서치’ 기능을 만들었다. 통상 음악 앱은 키워드를 기반으로 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지만, 스포티파이는 코히어의 ‘뉴럴서치’라는 API를 이용해 사용자들이 검색어를 잘못 입력해도 의미하는 바를 간파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탑재한 것이다.

기업용 생성형 AI 시장은 미디어·마케팅 분야를 위주로 성장할 전망이다. 가트너는 오는 2030년에 상영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90%가 생성형 AI가 제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텍스트로 된 영화 시나리오를 생성형 AI가 장편 영화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특정 고객층을 타깃으로 제작하는 마케팅 메시지도 현재는 2%에 불과하지만, 2025년엔 30%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로겐모저 재스퍼 CEO는 “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고 한다”면서 “(현재는) 10명의 카피라이터가 필요해 사람이 부족하다면, (앞으로는) 1명의 카피라이터만 두고 그가 AI를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업용 생성형 AI 시장이 확대되는데 걸림돌도 있다. 기업들이 자사의 기밀 유출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클라라 샤이 세일즈포스 서비스클라우드 CEO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챗GPT 사용자가 기업 기밀을 (서비스에) 입력했다면 (유출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아인슈타인GPT는 고객사가 입력한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을 탑재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