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전경./뉴스1

SK하이닉스가 미국의 ‘특허 괴물’ 램버스와 새로운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위해 재협상을 진행한 결과 10년간 4억4000만달러(한화 5779억원)를 지불하기로 했다. 올해 1분기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특허사용료 부담까지 가중돼 올해 경영지표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허 괴물이란 특허 분쟁의 대상이 될 만한 지식재산(IP)을 저가로 매입,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해 수익을 얻는 특허 전문 회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반도체 업계 대표적인 특허 괴물 중 하나인 램버스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인 특허 소송 제기로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을 공격해 왔다.

◇특허사용료 재협상 끝에 분기 140억원 확정

이번 협상 과정에서 SK하이닉스는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공을 들였고, 결과적으로 분기 사용료를 소폭 낮췄다. 최근 5년간 SK하이닉스는 램버스에 분기마다 150억원대의 로열티를 지불해왔으며, 이번 재계약에서 10억원 가량 비용을 하향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 내내 반도체 시황 불황에 따른 실적 부진이 이어질 전망이어서 이 같은 비용도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SK하이닉스 측은 “SK하이닉스와 램버스가 향후 특허 사용과 관련한 계약 조건에 대해 협의를 진행할 수 있고 추가적인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M16 공장 전경./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와 램버스 간의 특허 소송은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램버스는 SK하이닉스가 자사의 D램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오랜 공방 끝에 지난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이 램버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4억달러의 손해배상금 및 경상로열티를 지불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으며, 이후 2011년 열린 재심에서 손해배상금이 2억500만달러 수준으로 감액됐다.

법적 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SK하이닉스는 램버스와 포괄적 특허 사용 계약을 맺었다. 2013년 SK하이닉스는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5년 단위로 램버스에 분기당 일정 특허사용료를 내기로 합의했다.

다만 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는 램버스에 대한 특허 종속 관계가 최소 수십년 이상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램버스가 보유한 D램 원천 기술의 경우 D램의 기존 작동 원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해당 기술 없이는 제조가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특허의 경우 효력이 수십년 이어지기 때문에 SK하이닉스가 특허 사용 계약을 맺은 이상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1분기 적자 추정치 3조 넘어… 해외 교환사채 발행 결정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대규모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위험 수위에 오른 과잉재고 문제로 연간 사업 전망이 어두운 와중에 특허사용료로 들어갈 충당금 부담마저 가중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조8984억원의 영업손실로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컨센서스(최근 3개월간 증권사에서 발표한 전망치 평균값)는 매출액 4조9118억원, 영업손실 3조5580억원으로 집계됐다.

급격한 실적악화로 운영자금조차 확보하기가 힘들어진 SK하이닉스는 최근 2조원 상당의 해외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하기도 했다. 교환사채(EB)는 투자자가 보유한 채권을 일정 기한이 지난 뒤 발행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다른 회사 유가증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