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2026년부터 불소화 온실가스가 들어간 장비의 퇴출을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히트펌프 사업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히트펌프는 보일러를 대체하는 공조 시스템으로 공기나 땅·물이 가진 열을 끌어와 냉·난방을 하는 장비다. 기존 냉난방 시스템과 비교하면 최대 80%의 에너지 절감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시장에서 히트펌프를 판매하기 위해 불소화 온실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R290 냉매를 사용해야 하는데, 기존 냉매보다 비싸고 원활한 수급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말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히트펌프를 포함한 공조 장치에 들어가는 불소화 온실가스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26년부터는 불소화 온실가스를 포함하는 장비 제조가 전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럽시장에 판매하는 히트펌프에는 R410, R32 냉매가 사용되는데, 두 종류의 냉매 모두 불소화 온실가스가 들어가 있다.
임성용 냉매관리기술협회 이사는 "유럽의회의 규제로 R32 냉매를 못 쓰게 되면 3년 내에 R290 냉매로 완전히 대체해야 한다"면서 "이 냉매의 단가가 더 높아 히트펌프 제조 시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업계는 R32 냉매에 비해 R290 냉매가 20~30% 더 비싸다고 추산하고 있다. 임 이사는 "R290 냉매는 이제야 제품에 적용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3년 만에 모든 냉매를 R290으로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며 "비용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업체들이 고충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히트펌프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스 수입량이 줄어든 유럽 국가들이 제품 구입·설치비를 일부 지원해주는 정책을 펼치며 히트펌프 사용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 내 히트펌프 시장 규모는 2021년 200만대에서 2030년 70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현 시점이 유럽 히트펌프 시장을 공략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여기고 있다.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사장은 지난 1월 "유럽·미국을 중심으로 히트펌프 매출이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에너지 위기가 사업의 큰 성장 기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영준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도 이달 "고효율 냉매를 적용한 히트펌프로 유럽 냉난방 시장 공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전업계 불황 속에서 히트펌프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환경 규제로 냉매에 쓰는 비용이 급격히 늘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업체들은 유럽 현지에서 R290 냉매가 적용된 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는 냉·난방공조전시회 ISH 2023에서 'EHS Mono R290′을 공개했다.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제품군 중 최초로 R290이 적용된 게 특징이다. 같은 시기 LG전자도 R290 냉매를 적용한 '써마브이 R290 모노블럭' 히트펌프를 공개했다. 두 업체 모두 올해 유럽 시장에 이 제품들을 정식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