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87㎏급 이선기 선수(왼쪽)의 경기 장면./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이르면 내년부터 태권도 국제 경기에 인공지능(AI) 심판이 도입된다. 태권도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심판 판정 불신’을 해소하고 경기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3일 세계태권도연맹(WT)에 따르면 연맹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통해 이달 중으로 협력업체를 선정, 태권도 영상분석 인공지능(AI) 판정 지원 시스템 개발에 착수한다.

세계태권도연맹 관계자는 “올해 AI 판정 시스템 개발이 완료되면 내년 일부 국제 대회에서 테스트해보고, 파리올림픽이 끝난 뒤 2025년부터 연맹이 주관하는 국제 경기에 본격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인증을 받고 211개 회원국을 보유한 태권도 국제조직이다. 태권도계에서 FIFA(국제축구연맹)와 같은 역할을 한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정식 종목이 됐지만 판정 시비가 잦았다.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호구에 센서를 붙여 자동 채점하는 ‘전자호구’ 채점 방식도 도입했지만, 공정성 논란은 여전하다. 자세와 상관없이 일정 충격량 세기의 발차기로 호구에 공격을 하면 득점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태권도연맹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변형된 태권도 기술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득점을 확인하는 AI 판정 지원 시스템 개발에 나선 것이다. 특히 태권도가 올림픽 핵심 종목으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AI를 통한 공정한 판정이 필수적이라는 게 연맹의 판단이다.

2021년 7월 일본 마쿠하리 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태권도 67㎏ 초과급 결승에서 한국의 이다빈이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에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태권도연맹의 AI 판정 지원 시스템 개발 계획에 따르면 태권도 경기장 주변 다수의 카메라를 통해서 두 선수의 3차원(D) 위치정보를 AI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현재 태권도 대회의 경우 3개 이상의 카메라를 경기장에 설치하고 있다.

AI가 이 카메라를 통해 전송된 발차기 영상을 올바른 태권도 동작인지 판정한다. 만약 AI가 태권도 동작으로 볼 수 없는 ‘비태권도 동작’이라고 판단하면 득점이 인정되지 않는다. 판정 결과는 무선장치로 득점 판정 보조전광판에 전달된다.

세계태권도연맹은 경기장에서 해당 경기의 실시간 영상만을 이용해 점수를 채점하는 방식이 아닌, AI의 딥러닝(심층학습) 기법으로 수천 가지의 태권도 경기 득점 영상을 분석한 후 데이터화 할 계획이다.

최근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AI 판정 시스템 도입이 늘고 있다. 심판의 잘못된 판정에 따라 경기 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빈번한 만큼 AI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FIFA는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AI 심판을 처음 도입했다. AI는 축구선수의 신체 29개 지점을 초당 50회 측정하는 12대의 추적 카메라로 관절 움직임까지 확인한다. 대회 공인구 ‘알릴라’ 내부의 관성측정센서(IMU)는 1초에 500회 빈도로 공의 위치를 비디오판독(VR)실로 전달했다.

이를 통해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에서 전반 3분 에콰도르가 카타르의 골망을 흔들었지만, AI가 비디오 분석 결과를 종합해 오프사이드로 판단했다. 결국 해당 골은 취소됐다.

한국프로야구(KBO)도 이르면 내년부터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AI 판정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