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텍의 디멘시티1200./미디어텍 제공

대만 반도체 설계기업 미디어텍이 미국 인텔의 5G(5세대 이동통신) 모뎀사업부 일부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불리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중저가형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특화된 것으로 알려졌던 미디어텍은 지난해 퀄컴을 제치고 연간 모바일 AP 시장 1위를 차지했다. 5G 통신칩 분야에서도 경쟁사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대만 경쟁사들이 적극적인 파트너십과 인수합병(M&A)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삼성 최초의 반도체설계 전문 사업부인 시스템LSI는 지난 2017년 독립 사업부로 분사한 후 ‘조용한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미디어텍, 삼성 제치고 퀄컴 위협

2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지난 26일(현지시각) 인텔의 노트북용 5G 통신칩을 비롯한 모뎀사업부를 인수했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텔은 앞서 애플에 매각한 스마트폰, 태블릿PC용 모뎀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 부문을 미디어텍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트북PC를 중심으로 이어오던 4G, 5G 모뎀칩 사업 자산과 설계자산(IP)이 모두 미디어텍으로 넘어가게 됐다.

모뎀칩은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의 통신 기능을 담당하는 제품으로 미국 퀄컴이 시장의 절반을 장악해왔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퀄컴은 지난해 3분기 통신칩 매출 점유율 62.3%로 1위를 차지했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X65가 아이폰14에 적용되고, 자사 칩이 프리미엄 안드로이드 폰에 탑재되면서 점유율을 전년 동기 대비 약 8%포인트(P)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미디어텍은 26%의 점유율로 2위를 차지했으며 삼성전자는 6.1%의 점유율로 3위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21년 9%대였지만 오히려 3%포인트(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SA는 “퀄컴이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하면서 삼성은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노리고 있다”며 “다만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의 재고조정으로 출하량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5G 모뎀칩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미디어텍이 빠른 속도로 삼성을 앞질러나가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엑시노스 5100 모뎀을 출시하며 업계 최초의 5G 통합 모바일 칩셋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의 선제적인 5G 모뎀칩 시장 진출로 관련 시장에서 퀄컴과 양강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미디어텍에는 5G 모뎀칩 라인조차 없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2020년대 들어 미디어텍의 적극적인 투자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며 “모바일 AP, 모뎀칩 등 모바일 칩 전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지만 미디어텍, 퀄컴, 애플에 비해 발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연구개발(R&D)의 문제보다는 경영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텔 본사./인텔 제공

◇전문가들 ”팹리스는 M&A로 큰다”

세계 반도체 회사 중에서도 5G 모뎀칩 자체 설계 역량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는다. 3G, 4G 등 이미 상용화된 주파수와 5G와 같은 신규 주파수를 모두 지원해야 하는 만큼 개발과정이 복잡하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 투자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고리즘 개발부터 칩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필드 테스트 등 개발 기간이 길다는 점도 진입장벽이 높은 요인 중 하나다. 아이폰용 모뎀칩을 개발하는 애플 역시 잇달아 5G 모뎀칩 개발 실패설이 나오면서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 역시 적극적인 M&A가 모뎀칩 설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팹리스연합 관계자는 “미디어텍의 성공 과정을 살펴보면 M&A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2012년 엠스타와의 합병 이후 꾸준하게 크고 작은 M&A를 단행하고 있으며, 인텔 사업부 인수 역시 회사의 통신칩 중장기 로드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