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삼성전자 제공

급증한 메모리 반도체 재고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 D램 기업인 삼성전자의 D램 재고가 업계 최고치 수준을 기록하면서 사면초가에 놓였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D램 재고 수준은 약 21주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마이크론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주요 고객사들의 주문량마저 줄면서 실적 지표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삼성전자에 대한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주문량이 30% 이상 감소했다. 주요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하반기로 미뤄지면서 서버 구축에 필수적인 삼성전자의 메모리 출하량도 정체를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공격적인 가격 인하로 물량을 털어냈지만 수요가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면서 과잉생산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선을 그었던 삼성전자 경영진의 판단이 실책이었다는 책임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세계 반도체 시장 수요 침체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선언한 뒤 줄곧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이후 마이크론, SK하이닉스가 시장 수요·공급에 대한 적정한 평가를 내리고 감산을 선언했지만, 마이크론에 비해 SK하이닉스의 대응이 느렸고 삼성전자 역시 시장 수요 침체를 과소평가하며 과잉재고라는 악재를 떠안게 됐다”며 “21주치의 재고량은 올해 내내 삼성전자의 실적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이미 위험재고 수준을 뛰어넘은 상태이며, 추후 적극적인 감산 노력이 이어진다고 해도 연말에나 수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메모리 가격 하락세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2021년 9월까지 4.1달러를 유지하던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올 1월부터 1.81달러로 떨어졌다.

도현우 NH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감산 계획을 철회했다는 소문과 달리 이미 상당한 규모의 감산을 진행 중이며 재고치가 21주를 상회하는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감산 수준을 더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16Gb(기가비트) DDR5 D램./삼성전자 제공

전문가들도 메모리 수급 정상화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주요 기업들의 감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합친 한국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이다.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의 공급초과율은 112.5%로, D램 ‘치킨게임’ 사태가 벌어진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세계 주요 메모리 업체들의 감산 기조 등을 이유로 올해 3분기 D램 공급초과율 예측치를 종전 1.4%에서 -1.9%로 조정하고 있다. 당초 3·4분기까지 공급 과잉이 지속될 것으로 봤지만, 이번 예측에선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다올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올 1분기에 68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부문이 아닌 전체 사업 실적이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보고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분기별 실적 확인이 가능해졌던 2009년 1분기 이후 14년간 한 번도 분기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메모리 반도체 재고평가손실 여파로 반도체 부문 영업적자가 4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