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모델이 페이스북의 가상현실(VR)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2’를 홍보하고 있다./SK텔레콤 제공

이동통신업계가 ‘VR 헤드셋(HMD, 가상현실 기기)’ 유통에서 발을 빼고 있다. 5G(5세대 이동통신)가 상용화하면서 VR 산업이 성장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VR 헤드셋의 킬러 콘텐츠 부재와 불편한 착용감 등의 한계로 서비스 확대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16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메타플랫폼(페이스북)의 VR 헤드셋 국내 유통을 맡았던 SK텔레콤(017670)은 ‘메타 퀘스트 프로’의 출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메타 퀘스트 프로의 국내 유통을 협상 중이지만, 출시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메타 퀘스트 프로는 메타플랫폼이 지난해 10월 새롭게 출시한 VR 헤드셋이다. 출시한 지 반년이 다 돼가도록 국내 유통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메타 퀘스트 프로 VR 헤드셋./연합뉴스

그동안 SK텔레콤은 메타플랫폼과 계약을 통해 ‘오큘러스 고(2019년 출시)’ ‘오큘러스 퀘스트2(2021년 출시)’ 등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국내 독점 유통을 맡았다. 오큘러스 퀘스트2는 메타플랫폼이 2020년 10월 출시한 제품으로, 당시 SK텔레콤은 일찌감치 유통을 결정하고 2021년 2월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오큘러스 퀘스트2는 출시 3일 만에 1차 물량 1만여대가 완판됐고, 2차 물량 수천대도 5분 만에 완판됐다. 하지만 이후 판매량은 기대에 못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출시가격이 50만~60만원대로 ‘가성비 VR 헤드셋’으로 불리는 오큘러스 퀘스트2의 판매가 꾸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보다 더 비싼 메타 퀘스트 프로 물량을 대량 계약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메타플랫폼은 메타 퀘스트 프로 가격을 기존 1499달러(196만원)에서 이달부터 999달러(131만원)으로 인하했지만 여전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싼 수준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메타 퀘스트 프로가 기존 제품들보다 비싸게 나온 전문가용 제품에 가깝기 때문에 SK텔레콤 입장에서 유통을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아 VR 페스티벌 2020(KVRF 2020) 내 KT 전시관에서 직원들이 슈퍼VR 콘텐츠를 즐기는 모습.

KT(030200)는 ‘기가라이브TV’ ‘슈퍼VR’ 등 그동안 VR 헤드셋을 여러차례 출시한 바 있다. 특히 KT가 가장 공을 들였던 슈퍼VR은 2019년 중국 VR 헤드셋 제조업체인 피코인터랙티브와 협력해 출시했다. 당시 롯데렌탈과 협력해 VR 기기를 대여해서 쓸 수 있는 렌탈 서비스도 진행했다.

슈퍼VR은 출시 3개월 만에 3차 출고 물량까지 1만3000대 이상을 판매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할인과 특가에도 판매량이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피코인터랙티브에서 ‘피코4′ 등 신제품도 출시했지만, KT는 더 이상 VR 헤드셋 유통 계획이 없다는 방침이다. 슈퍼VR 앱 서비스까지 지난해 11월 종료했다.

KT 관계자는 “VR 헤드셋 유통 대신 B2B 디지털트윈 플랫폼과 메타버스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 환경에 있는 물리적 자산의 기능, 특성, 동작 등을 디지털로 복제하는 기술이다.

LG유플러스(032640)도 2019년 피코인터랙티브와 협력해 VR 헤드셋 ‘피코 U’를 처음 선보이고, 이후 스마트폰과 유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의 ‘피코 리얼 플러스’도 출시했다.

엔리얼과도 협업해 AR(증강현실) 헤드셋인 ‘U+ 리얼 글라스’를 국내 선보였지만 2년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현재 엔리얼은 국내에서 LG유플러스와의 협력이 중단된 뒤 직접 신제품 유통과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엔리얼 에어 기능 영상 /엔리얼 제공

통신사 입장에서는 자사 5G 킬러 콘텐츠를 확산시키기 위해 VR 헤드셋 보급이 필요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VR 헤드셋 판매량은 전년보다 2% 줄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AR(증강현실)기기와 함께 12% 이상 판매량이 감소했다. 시장분석업체인 CCS인사이트 조사에서도 VR 헤드셋과 AR 기기의 지난해 전 세계 출하량은 960만대로 전년 대비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T업계 일각에선 VR 헤드셋이 ‘3D TV’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한 때 미래형TV로 주목받던 3D TV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부족과 불편한 안경 착용 등의 원인으로 시장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SK텔레콤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출시 1주년을 맞아 한층 더 진화한 소셜 메타버스 서비스 도약을 위한 ‘이프랜드2.0′ 단계로 돌입한다고 밝혔다./SK텔레콤 제공

통신사들은 최근 VR 헤드셋 등 별도의 장비 착용이 필요없는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SK텔레콤은 2021년 7월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한국에서 처음 출시했고, 이어 지난해 11월 전 세계 49개국에 동시 출시했다.

이프랜드는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아바타가 거주하는 공간을 꾸며 다른 사용자와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KT도 지난 13일 메타버스 플랫폼 ‘지니버스’ 시범 서비스 버전을 출시했다. 지니버스도 이프랜드와 마찬가지로 나의 아바타와 공간을 직접 꾸밀 수 있고, 친구를 초대할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말 어린이용 메타버스 ‘키즈토피아’ 오픈 베타 버전을 출시했다. 기존 메타버스 서비스와 달리 2010년대 초반부터 2020년대 중반에 태어난 ‘알파세대’를 겨냥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