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는 2017년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부를 인수한 후 A3 인쇄기 시장 점유율을 기존 대비 3배 이상 늘렸습니다. 앞으로도 구독형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통해 성장을 이어가려 합니다."
박수희 HP 프린팅 코리아(HPPK) 상무는 지난 6일 경기 성남시 HPPK R&D 센터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A3용 기기는 인쇄기 시장 선두인 HP가 가지지 못 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며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가 개발한 A3 인쇄기에 HP의 기술력을 더할 수 있었고 시장에서 입지를 크게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HPPK는 전 세계 HP 지부 중에서 유일하게 A3 인쇄기를 연구·개발하는 곳이다. A3 인쇄기는 프린팅 시장에서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기준 A3 인쇄기 시장은 약 45조원 규모다. A4 인쇄기 시장(55조원)보다 전체 규모는 작다. 그러나 A4 인쇄기 전체 출하량이 8000만대, A3 인쇄기 전체 출하량이 520만대임을 고려하면 A3 기기가 수 배 이상 비싼 것을 알 수 있다. 박 상무는 "가격도 더 비싼데다 기업에 대여 형식으로 판매돼 수익이 꾸준하게 나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당초 HP는 글로벌 A4 인쇄기 시장에서 과반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A3 인쇄기 시장엔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로 개인이 이용하는 A4 인쇄기에 비해 사용 빈도가 훨씬 잦아 내구성을 갖추는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쇄 과정에서 주요 문서들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아야 하기에 자체 보안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사무실에 설치된 많은 인쇄기를 한 번에 통제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때문에 시장 진출을 위해선 한국에서 유일하게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 프린트 사업부를 인수해야만 했다.
삼성전자에서 20년 이상 인쇄기 개발 업무를 담당한 박 상무는 HP와의 인수합병 당시 두 업체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프린팅 사업부에 있었던 박 상무는 두 업체의 기술과 사업 방향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 상무는 "두 회사가 서로 다른 기술과 업무 체제를 가지고 있어 통합 과정에서 걸림돌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HP와 삼성전자의 인쇄기는 서로 다른 PCB(인쇄회로기판)를 사용하고 있었다"며 "두 회사의 기판을 한 제품에 같이 적용하게 되면 원가도 많이 들뿐더러 동일한 펌웨어를 쓰지 못해 인쇄기의 작업 효율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20년간 프린팅 관련 업무를 해왔기에 두 회사의 기판 기술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했다.
두 기업이 통합을 마친 뒤 박 상무와 부서원들의 노력으로 기존에 A3 인쇄기 제품군이 없었던 HP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5년 만에 8%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사업부 인수 전 삼성전자가 가지고 있던 점유율의 3배다. 박 상무는 "다양한 혁신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한 결과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서 "토너·프로그램 구독 서비스 인쇄기 관리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속해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갈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박 상무는 부산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1998년 삼성전자에 인쇄기 전용 SoC(시스템온칩)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2016년엔 삼성전자 프린팅 솔루션 사업부에 재직하다 2017년 HPPK에 합류했다. 다음은 박 상무와의 일문일답.
-현재 HPPK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인쇄기, 스캐너 제품 생산 과정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인쇄기에는 여러 부품과 기술이 들어간다. 예컨대 내부에 들어가는 엔진, 저소음 기술, 고속 스캐닝 기술 등이 있다. 제작 과정이 복잡한 만큼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꼼꼼한 검수가 필요하다. 199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프린팅 사업 업무만 담당해 왔기에 이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인쇄기에 들어가는 SoC를 개발하는 업무만 담당했다. 그러다가 점차 엔진, 토너를 비롯한 다른 부품이나 펌웨어 같은 소프트웨어 관련 프로젝트까지 맡으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최근 진행했던 A3 전용 인쇄기 관련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8월 북미 지역에 먼저 내놓은 뒤 올해 3월 글로벌 출시한 제품인데 70페이지를 1분 만에 뽑을 수 있는 고속 인쇄 기능과 스캐닝을 할 때 빠르게 글자를 인식해 이미지로 만드는 OCR(광학식 문자 판독장치)이 적용됐다. 일반적인 인쇄기의 경우 작업 중 용지가 걸리면 작동을 멈추지 않나. 이번에 개발한 A3 전용 인쇄기는 스스로 걸린 용지를 당기고 미는 '리버스 앤 리트라이' 기술이 적용됐다. 개발팀 전체가 5년이나 공을 들인 끝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후 여러 전시회 등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7년 HP가 삼성전자의 프린트 사업부를 인수할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당시 삼성전자 프린팅 솔루션 사업부 일을 맡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인쇄기 제작 공정과 비즈니스 전반을 알고 있었던 만큼 HP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회사가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는 만큼 통합 과정에서 걸림돌이 많았다. 20년간 프린팅 관련 업무를 해왔기에 두 회사의 기술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두 회사의 업무 시스템의 합일점을 찾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업무를 진행할 때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쓰다보니 회사를 인수합병할 때 서로의 작업물에 대해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A3 인쇄기 시장에 참여하는 업체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을 공략하는 이유가 뭔지.
"A3 시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시장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글로벌 A3 인쇄기 시장은 약 45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55조원인 A4 인쇄기 시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A3 인쇄기 출하량은 520만대 수준으로, 8000만대 수준인 A4 인쇄기 출하량보다 훨씬 적다. 똑같이 1대를 팔더라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다른 셈이다. A3 인쇄기의 대여형 판매 방식도 수익성을 올리는데 도움을 준다. 기업들은 프린터기를 사서 이용하지 않는다. 기기와 관련 소프트웨어 사용권을 빌린 뒤 매달 이용료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A4 인쇄기의 경우 기업이 아닌 개인 이용자들이 주로 쓰기에 한번 판매하게 되면 부가적인 수입이 거의 없다. 반면 A3 인쇄기는 한 번 대여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게 장점이다.
다만 A4 인쇄기보다 더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하고 제작 원가도 비싼 만큼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 시장은 캐논, 제록스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때문에 시장 진입을 위해 기존에 A3 인쇄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의 사업부를 인수한 것이다. 기업에서 인쇄기를 한번 대여하면 치명적인 고장이 나기 전까진 지속해서 사용하게 된다. 사무실에 많게는 수백대 이상 설치하는 인쇄기를 자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보니 제품의 내구성이 중요하다. 이 점을 고려해 제작 과정에서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만큼 기기 자체의 보안성도 중요해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 앞으로는 토너 정기 배달을 비롯한 구독형 서비스와 편의성을 높여주는 소프트웨어 개발로 시장 점유율을 더 늘려나갈 방침이다."
-공학 분야에서는 흔치 않은 여성 리더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여성단체인 '소사이어티 오브 우먼 엔지니어' 한국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성 공학자들이 모여 연구실적 등을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단체다. 이 곳에서 토론 패널로 참여하고 스폰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HPPK 내부적으로도 여성 임원 비율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WIN(Women's Impact Network)라는 여성 직원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다. 공학 분야가 여성이 많지 않은 분야라 후배들이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서로 소통하고 도와가면서 성장하면 분명히 여성들도 공학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