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에 따라 종류·효과·성능이 결정되는 아이템으로 게임업계의 주요 수익모델이었다. 조선비즈는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정보 공개 의무화가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매우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고 아이템을 끝없이 사게 하면서도, 언제든지 잃을 수 있게 합니다.”
“승패 가능성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도록 공지하고, 알고리즘과 확률을 불투명하게 공개합니다.”
노르웨이 소비자평의회(NCC)는 작년 5월 ‘동전을 넣으세요: 게임 산업이 확률형 아이템으로 소비자를 약탈하는 방법(INSERT COIN: How the gaming industry exploits consumers using loot boxe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하는 게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이 보상을 받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악용하고 있다”며 “이용자들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돈을 쓰도록 하기 위해 게임사들은 광범위한 속임수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NCC에 따르면 게임 내 아이템을 구매하도록 하는 수익 모델은 2021년 전 세계적으로 1780억달러(235조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그 중에서 확률형 아이템 매출은 150억달러(20조원) 이상을 차지했다. 2025년에는 그 규모가 200억달러(26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사들의 주 수입원이며, 게임사들도 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치다.
◇ “확률형 아이템 확률, 카지노 버금갈 정도”
28일 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해외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NCC에 따르면 EU 인구의 절반 가량인 2억5000만명, 미국에서는 4명 중 3명 꼴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NCC는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수의 소비자들이 게임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게임사들도 그에 수반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NCC의 보고서는 유럽연합(EU) 내 8개국, 20개 소비자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됐다.
NCC는 “확률형 아이템이 논란이 된 것은 10년도 더 지났지만 게임사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다”며 “이용자들의 게임 중독을 촉진하고 확률 투명성이 결여돼 도박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의 무작위성은 카지노에 버금갈 정도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카지노는 엄격한 연령 제한을 두고 있지만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게임들은 어린 아이들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라며 “2020년 기준 노르웨이에서는 9~18세의 28%, 15~16세의 55%가 확률형 아이템에 돈을 써본 적이 있으며, 영국에서는 11~16세의 44%가 이 같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실시간으로 변경하고 개인화할 수 있다는 것도 보고서는 비판했다. 보고서는 “게임사들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돈을 쓸 가능성 등을 추론한 뒤 개개인에 맞춰 확률을 변경할 수도 있다”면서 “확률이 계산되는 방법 등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련 데이터를 게임사들이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게임사들이 수집하는 이용자의 나이, 성별, 관심사, 소비습관 등은 지출을 극대화하는데 활용된다”고 덧붙였다. 미국 게임 제작사인 일렉트로닉아츠(EA)는 지난 2021년 피파21 게임에서만 게임 내 구매로 16억2000만달러(2조1400억원) 이상을 벌었다. 이는 그해 일렉트로닉아츠 매출의 29%에 달한다.
유럽 전역에서는 불공정 계약 조건 지침(UCTD), 불공정 상거래 지침(UCPD) 등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한 소비자들이 보호를 받게 하고 있다. 보통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취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위 지침들에 따르면 게임사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는 없다. 게임 안에서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게임 요소들이나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하는 타이밍 등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특히 벨기에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처럼 취급해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확률형 아이템 금지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독일 하원은 미성년자 대상 확률형 아이템 판매 금지 내용이 담긴 청소년 보호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 ‘디아블로 이모탈’, 아시아식 확률형 아이템 모델 도입해 비판
미국 게임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이모탈’은 최근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출시가 취소됐다. 두 국가의 도박 규제 때문이다. 프랑스 등 EU 내 다른 국가를 통해 이 게임을 내려받아도 불법에 해당한다. 벨기에에선 현금으로 획득할 수 있는 무작위 보상에 대해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며 우려했다.
작년 6월 디아블로 이모탈 출시 당시 미국 시장 반응은 비판적이었다. 게임 내 유료 아이템으로 판매되는 ‘전설 보석’은 캐릭터 성능에 크게 영향을 주게 돼 있는데 디아블로 이모탈을 이용한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4000달러를 써도 전설 보석을 얻을 수 없었다” “전설 보석은 대체 언제 나오는 것이냐”는 등의 불만을 표출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디아블로 이모탈의 과금에 대해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북미 게임에 아시아식 ‘확률형 아이템’ 모델을 도입했기 때문이다”라며 “중국 게임과 비교해 봐도 과금의 도가 지나쳤다”고 보도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게임 출시 전 “돈으로 장비를 획득하거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라고 밝혀 비판을 받았다.
확률형 아이템은 아시아에서도 일찌감치 규제에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2012년부터 업계 자율규제를 통해 컴플리트 가챠를 금지했으나 2020년부터는 법적으로 이를 규제하고 있다. 이를 어긴 게임사는 시정명령을 받게 되며 또 다시 어기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컴플리트 가챠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가장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과금 시스템 중 하나다. 중국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정확하게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뽑기 확률을 공개해야 하며, ‘몇 번 뽑기를 하면 1번 이상 나올 수 있다’는 식으로 명확하고 쉽게 표시하라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