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확률에 따라 종류·효과·성능이 결정되는 아이템으로 게임업계의 주요 수익모델이었다. 조선비즈는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향후 법안 통과 시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지난 2021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메이플스토리 사용자들이 보낸 트럭이 세워져 있다./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게임입니까 도박장입니까?”

2021년 2월 넥슨 ‘메이플스토리’ 사용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으로 대형 전광판이 달린 트럭을 보냈다. 트럭에는 ‘강원랜드도 하는 확률공개, 메이플스토리는 영업비밀?’ ‘겉으로는 단풍이야기 뜯어보니 바다이야기’ ‘확률조작 해명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넥슨은 당시 ‘메이플스토리’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면서 ‘환생의 불꽃’ 아이템과 관련해 “아이템에 부여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추가 옵션이 동일한 확률로 부여되도록 수정한다”고 공지했다. 추가옵션은 아이템의 공격력, 마력, 이동속도 등을 강화해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때까지 넥슨이 게임 속 아이템 설명칸에서 추가옵션을 ‘무작위’로 제공한다고 설명한 점이다. 사용자들은 원하는 옵션이 나올 확률이 동일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는 소수점 이하의 극악의 확률이었던 셈이다.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은 “넥슨이 좋은 성능의 옵션은 낮은 확률로, 나쁜 성능의 옵션은 높은 확률로 부여하는 확률 조작을 해온 것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국회 뿐 아니라 넥슨 본사에서도 트럭 시위가 이어졌다. 게임머니 충전 한도를 0원으로 낮추는 ‘0원 챌린지’ 등 항의 표시도 이어갔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촉발하게 된 계기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속 ‘환생의 불꽃’ 아이템./조선DB

◇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확률형 아이템으로 논란 일으켜

27일 업계에 따르면 게임산업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데 이어 지난 17일 법사위를 통과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회사가 정한 확률에 따라 게임 아이템이 나오는 것을 뜻한다. 랜덤박스라고도 한다. 아이템 획득률을 1%라고 가정하면 100번 중 1번만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기대심리 때문에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아이템을 구매하기 십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이플스토리 사건으로 게임사가 주장하는 ‘무작위’와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무작위’에 심각한 괴리가 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라며 “게임사들이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을 주요 수익원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도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게임 내 핵심 아이템 대부분을 확률형 아이템으로 판매했다. 최상급 아이템의 경우 아이템 획득을 위한 기대비용만 수억원에 달한다. 2020~2021년 사이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내 최고의 게임 개발사라는 회사가 지나친 과금유도, 도박성 콘텐츠로 수억원·수십억원을 과금하게 만든다” “각종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들은 제재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다” “한 달에 모바일게임에 과금할 수 있는 최대 결제금액을 책정해 무분별한 현금결제를 막을 수 있게 해달라”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넷마블은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모두의마블’에선 게임 내 특정 캐릭터를 항상 획득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벤트 기간에만 획득할 수 있는 한정 캐릭터로 표시했다.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상승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확률을 부풀려 표시했다. ‘몬스터 길들이기’에서는 아이템 획득 확률이 0.0005~0.008% 수준으로 극히 낮은데도 1% 미만이라고만 광고했다. 시정명령과 더불어 과징금 4500만원, 과태료 1500만원을 맞았다.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점은 사행성 뿐만이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이 보편화 되면, 이용자가 획득한 아이템의 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아이템을 구매해 대다수가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게 되면, 더이상 그 아이템은 비교우위에 있는 아이템이 아니게 된다”며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면 이용자들도 점점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돈을 계속해서 쓰는 상황이 반복된다”라고 했다. 전체이용가 등급 게임의 경우 유소년층까지 ‘현질(현금 지르기)’을 하게 만든다는 점, 구매한 아이템을 교환·환불할 수 없다는 점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3월 메이플스토리, 리니지와 함께 모두의마블 등 총 5개 게임에 대해 확률 조작이 의심된다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의뢰했다. 현재 공정위 조사가 진행중이며 2021년 4월과 작년 6월 넥슨코리아 본사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하 의원은 “게임사들은 확률만 공개하라고 하는데 영업 비밀이라고 버티고 있다”며 “이는 스스로 야바위꾼임을 자처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리니지M./엔씨소프트 제공

◇ “소비자 신뢰 잃었는데 자율규제 누가 믿겠나”… 유료 아이템 확률만 공개해 ‘꼼수’ 가능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015년부터 게임사들이 정한 확률을 스스로 공개하도록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미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확률 공개를 법률로 강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작된 확률을 공개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알 길이 없다”며 “게임사들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이미 잃은 상황인데 누가 믿겠나. 더이상 자율규제만으로는 소비자들이 체감하기에 무언가 개선됐다거나 바뀌었다고 느끼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자율규제는 초반에는 유료 아이템에 한해서만 확률을 공개하도록 했었다. 유료 아이템과 무료 아이템을 섞어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면 규제 대상이 아니기에 게임사들의 ‘꼼수’가 가능하다.

예컨대 엔씨소프트 리니지2M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신화 무기’는 아이템 중 일부에 대해서만 확률 공개를 해서 논란이 됐다. 신화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선 ‘신화 제작 레시피’가 필요하고, 신화 제작 레시피는 ‘고대의 역사서’ 1장부터 10장까지 모두 모아야 만들 수 있다. 고대의 역사서를 제작하기 위해선 희귀·영웅·전설 3가지 종류의 레시피가 필요하다. 희귀·영웅·전설 레시피는 무상 또는 유상으로 획득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자율규제 초반에 유상 아이템의 확률은 공개했으나, 고대의 역사서 제작 확률은 비공개로 했다. 아이템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 일부 확률을 비공개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유·무료 결합 아이템 확률도 공개하겠다”고 뒤늦게 나섰고, 엔씨소프트도 해당 게임 고대의 역사서 제작 확률을 2021년 하반기 들어서 공개했다.

게임의 주 이용자층인 20-30대도 법안 통과를 지지하고 있다. 최근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에 대해 “게임 산업에 피해를 준다”며 반대하자, 게임 이용자들이 김 의원에게 항의 문자 폭탄을 퍼부었다. 한국게임학회도 김 의원에게 항의성 질의서를 보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확률 공개가 의무화되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질 것이다. 이용자가 수천만원을 들였는데 원하는 아이템이 안나오면 게임사에 소송을 할 수도 있다”며 “게임사 입장에서는 재판에서 확률 조작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며, 확률을 조작할 가능성이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