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이 생산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산소공장의 대형 공기분리장치(ASU) 전경. /포스코 제공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품귀 현상을 빚은 반도체용 희귀가스 네온의 가격이 1년 6개월 만에 바닥을 찍었다. 네온 수입량 역시 8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이 악화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줄어든 데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네온을 국내 기업이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수급이 안정화된 영향이다.

24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에 수입된 네온 가격의 톤(t)당 가격은 최고가를 찍은 지난해 6월 290만달러(약 37억원)보다 99% 하락한 5만3700달러(약 7000만원)를 기록했다. 하락세를 이어오던 지난해 12월(58만3900만달러)과 비교해도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네온 수입 물량도 확 줄었다. 지난달 수입량은 2.4t으로 2014년 10월 이후 8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네온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빛을 이용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의 주재료다. 반도체 공정에서 필수 원료로 꼽히지만, 2021년까지만 해도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그동안 한국은 전 세계 희귀가스 생산량의 70% 이상을 점유한 우크라이나·러시아에서 네온 등을 주로 수입했으나, 러시아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공급망이 끊겼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2분기부터 평년 대비 40배 이상 오른 중국산 희귀가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들여왔다. 지난해 중국산 희귀가스 수입 비중은 전체 수입량의 80~100%까지 늘었다. 그 사이 네온 가격은 지난해 6월 전년 대비 약 55배 오른 290만달러(약 37억7500만원)로 최고치를 찍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희귀가스는 통상 3개월 치 재고를 미리 비축해두고 고정가격에 계약을 맺어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큰 타격이 없었으나, 공급 부족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공급망을 빠르게 다변화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수급 불균형으로 희귀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널뛰자 정부와 국내 기업들은 국산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냈다.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광양제철소 산소공장에서 네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포스코와 반도체용 특수가스 전문기업 TEMC는 협력해 제철 공정용 가스 생산에 사용 중인 대형 공기분리장치를 활용한 네온 생산 설비를 자체 개발했다. 이를 통해 추출한 네온을 TEMC가 독자 기술로 정제한 뒤 완제품인 엑시머 레이저 가스까지 생산하고 있다. 광양제철소 산소공장에서 나오는 고순도 네온은 국내 수요의 16%가량을 충족할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생산된 국산 네온은 전량 판매되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들도 국산 희귀가스 사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네온 사용량의 40%가량을 국산으로 대체했고, 내년까지 이 비중을 100%로 늘릴 계획이다. 또 올해 6월까지 국산 크립톤과 제논 가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국산 네온 도입에 이어 포스코와 협력해 제논 가스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국산 희귀가스 수입 비중은 크게 줄었다. 지난달 국내에 소량 수입된 네온은 전량 러시아산이다. 여기에 반도체 업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악화하면서 네온 등 희귀가스 수요 자체가 줄어, 가격은 한동안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다. 다만 주요 수입국인 러시아가 미국의 대러 제재에 대응해 한국을 포함한 비우호국에 희귀가스 수출 제한 조치를 올 연말까지 연장한 점은 변수다. 코트라 관계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희귀가스 생산 공장은 폐쇄된 상태고, 러시아로부터의 희귀가스 공급도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공급 불안정 이슈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어 공급선 다변화와 국내 생산 능력 확보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