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욱 ARM코리아 대표이사(사장)는 지난 14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ARM코리아 본사에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RM코리아는 수년전부터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약 58개 정부와 10여개의 팹리스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ARM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으로 세계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 디자인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애플, 퀄컴 등이 설계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ARM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ARM코리아는 지난 2018년 삼성전자 출신의 황선욱 대표가 합류한 이후 국내 팹리스 생태계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황 지사장이 사장으로 임명된 이후 ARM코리아는 국내에 ARM 인증 디자인파트너(AADP)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국내 반도체 디자인 하우스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했고, 이 기간 44개의 기업이 25개의 시제품 칩을 출시하는데 성공했다.
황 사장은 “반도체 산업은 스타트업이 뛰어들기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 시스템온칩(SoC) 샘플 제품을 하나 만들기까지 필요한 금액은 14나노 칩 기준으로 최소 100억원에서 500억원을 넘나든다”며 “무엇보다도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라이선스, 설계자산(IP) 등을 확보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RM이 스타트업이 적은 비용으로도 칩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황 사장은 “칩을 샘플링하는 수준까지 드는 비용을 ARM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적정한 금액만 내면 ARM IP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전체 개발비용의 20~30%를 줄일 수 있다”며 “개발 과정에서 스타트업이 칩의 설계를 두고 레고를 붙였다 떼듯 자유롭게 실험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세계적인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화형 AI 챗GPT 역시 ARM의 디자인이 기반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 13일 AI 반도체 팹리스인 리벨리온이 내놓은 국내 최초 챗GPT 자연어 처리기술 지원 AI 반도체도 ARM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했다. 황 사장은 “올해에는 더 많은 기업들이 ARM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양한 AI 기술을 반도체로 구현해낼 것으로 본다”며 “ARM은 이 기업들이 개방적이고 효율적으로 AI 솔루션을 확대해나가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황선욱 사장과의 일문일답.
-삼성 반도체에서 29년 근무한 ‘삼성맨’이었는데 ARM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삼성전자에서 처음 했던 일이 1997년부터 ARM의 라이선스를 삼성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16비트 이상의 중앙처리장치(CPU)가 없어서 글로벌 회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았는데, 그중에서 ARM의 생태계가 가장 컸다. 그리고 ARM의 IP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를 만들었는데, 여기서부터 현재 삼성 시스템LSI의 엑시노스 전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ARM의 강점은 파트너 지향적인 생태계다. 삼성 파운드리 역시 초기에는 혼자서 다 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중에는 ‘SAFE 프로그램’과 같은 파트너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시장 불황이 ARM에 미친 영향은.
“물론 영향이 없을 수 없다. 기업들의 신규투자가 매우 신중해진다. 작년 초와 비교하면 팹리스 투자도 다소 둔화돼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ARM의 고객사들이 ARM의 IP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비용 측면에서 ARM의 IP를 활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4분기 라이선스 수익을 보면 65% 증가했고, 로열티 수익도 12% 가량 늘었다.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소비자가전 등에 집중돼 있었던 ARM의 사업영역이 자동차, 데이터센터, 엣지 등으로 확대됐다. 그부분의 성장률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ARM은 전통적으로 저전력·고효율의 칩 설계에 강점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칩 퍼포먼스가 중요한 데이터센터나 자동차 분야에서도 영향력이 커졌다.
“모든 건 타이밍이다. 데이터센터 시장이 급성장한 건 팬데믹 기간에 비대면 수요가 데이터 트래픽의 폭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량 문제가 대두됐다. 전체적인 전력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ARM이 가장 적합한 아키텍처였다. 오토모티브 쪽에선 ARM이 가진 보안, 안전성 관련 솔루션들이 자동차의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레벨에 따른 최적화가 잘 준비돼 있었다.
무엇보다 반도체 공정의 진화, ARM의 아키텍처의 진화가 결합된 시너지 효과도 크다. ARM의 아키텍처 자체가 개선되고 다양화됐고 삼성전자나 TSMC 등 파운드리 기업들의 반도체 공정도 점점 더 고도화됐다. 과거 종합반도체기업(IDM)이 독자적으로만 하던 제한된 공정과 비교해 월등한 솔루션이 나올 수 있도록 (설계와 파운드리의)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최근에는 디자인하우스와의 파트너십이 크게 확대됐다.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의 비중이 거의 50대 50이 됐다. 특히 삼성 파운드리와 연계돼 있는 에이디티, 가온칩스, 코아시아 등의 디자인하우스들을 많이 지원해왔다. 필요한 경우 트레이닝도 제공했다. 많은 고객사들이 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칩을 원하기 때문에 고객의 수요를 맞출 수 있도록 역량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ARM의 사업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고, 디자인하우스와 삼성 역시 원하는 부분이었다. 한국은 특히 팹리스나 스타트업 분야에서 육성이 많이 필요했다. 대만과 같은 국가들은 이미 TSMC와 같은 거대기업을 바탕으로 생태계가 설정돼 있는 상태여서 굳이 육성을 하지 않아도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ARM의 IP를 바탕으로 비(非)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기술을 직접 개발하거나 디자인하우스를 통해 자사에 최적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는 이미 포트폴리오의 중심이 돼 있다. 모든 프레임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들이 IoT, 오토모티브 분야에서 비반도체 기업들의 칩 개발을 주도하고 있지만, 아직 서버용 칩 분야까지 진출하지는 못한 상태다. ARM코리아는 현재 디자인하우스들과 칩 설계와 관련한 방법론, 레퍼런스를 공유하면서 이 기업들이 서버 시장에 진출하도록 돕고 있다. 자동차 분야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과 관련한 기술로 넘어가면 자동차용 칩 설계 역시 높은 퍼포먼스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서버용 칩에 들어가는 기술을 접목해야 한다. 이제는 디자인하우스가 직접 팹리스와 함께 설계를 하고 공동 디자인을 해서 고객사(완성차 회사)가 원하는 칩을 공동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챗GPT 광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다수의 기업들이 ARM의 IP를 바탕으로 AI에 특화한 칩을 내놓고 있는데.
“최근 AI 툴 중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챗GPT는 AI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ARM이 타사의 솔루션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ARM은 세계 최대의 컴퓨팅 IP를 보유하고 있는만큼 최대한 많은 기업들이 개방적이고 효율적으로 AI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 AI 비즈니스에 진입할 때, ARM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스타트업들은 자본, 인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제한된 핵심 기술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이어가는데, 하나의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머지 설계 자산들을 채워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타트업이 제대로된 SoC를 만들 수 없다. ARM은 이 기업들이 자유롭게, 막대한 라이선스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ARM의 자산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하나의 칩을 끝까지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것은 스타트업의 성공뿐만 아니라 ARM의 성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