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사피온이 협력해 자체 개발한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SAPEON(사피온) X220' /SK텔레콤 제공

국내 이동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017670)의 ‘인공지능(AI) 컴퍼니’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그간 사업 방향이 주력 사업인 ‘통신’에만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초거대 AI, AI 반도체, 양자, 도심항공교통(UAM) 등 AI와 관련된 정보기술(IT)에서 첨단 제조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AI와 관련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영역의 기술과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AI 백화점’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AI 전략의 하나로 SK텔레콤은 팹리스 자회사 사피온과 함께 연내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생산하는 차세대 AI 반도체 X330 출시한다. 빠른 연산과 저전력이 특징인 AI 반도체는 AI 산업화를 위한 필수 기술로 꼽히고 있다.

◇ AI·양자 반도체 개발... 연내 성과 목표

30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정무경 사피온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 10일 열린 지능정보산업협회(AIIA) 조찬 포럼에서 “올해 AI 반도체 신제품 X330을 출시한다”며 “X330은 기존 X220에 비해 성능이 4배 정도 향상됐다”고 밝혔다. 전작인 X220은 AI 추론 전용 모델인 반면, X330은 추론과 학습이 모두 가능해 사용자 입장에서는 범용성과 비용 절감을 확보할 수 있다.

사피온은 SK텔레콤과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 3개 회사가 투자해 설립한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다. AI 반도체 설계를 주력으로 하는데 2020년 말 SK텔레콤에서 분사했다. 현재 사피온의 본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고, 사피온코리아가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다.

사피온은 2020년 국내 기술 100%로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되는 사피온 X220 개발에 성공했다. X220은 AI 추론 연산에 특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로 중앙데이터센터부터 ‘모바일 에지 컴퓨팅(MEC)’에 필요한 소규모 데이터센터까지 다양한 곳에 적용할 수 있다.

SK텔레콤 CES 전시관 모습. UAM 항공기 운항에 사피온 반도체를 활용하면 AI 성능이 향상되면서 항공기 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 /SK텔레콤 제공

사피온 X220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비교해 딥러닝(심층학습) 연산 속도가 1.5배 빠르고, 전력 사용량은 80% 수준이며, 가격은 GPU의 절반에 불과하다. X220은 AI 반도체 성능 시험 대회 ‘MLPerf’에서 엔비디아의 최신 GPU A2보다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평을 받았다. 현재 X220은 NHN의 데이터센터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피온 X220은 코어당 평균 87TOPS, 최대 100TOPS(1TOPS는 1초에 1조번의 연산이 가능)의 성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2020년 10월)에 공개된 애플의 AI 반도체 ‘A14 바이오닉’이 11TOPS의 성능을 갖춘 점을 고려하면 AI 실행 능력이 8배 이상 우수한 셈이다. SK텔레콤은 이러한 성능을 토대로 낡은 이미지와 영상을 고해상도로 복원하는 ‘슈퍼노바’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올해 X330 출시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X330은 7㎚ 공정에서 생산되는데, X220의 경우 28㎚ 공정에서 생산됐다. 반도체 집적도는 높아질수록 전력 대비 성능이 개선될 수 있다. 현존 GPU 가운데 성능이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받는 엔비디아 A100 모델도 7㎚ 공정에서 생산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양자 분야에서도 반도체 설계 능력을 키우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2011년 양자기술연구소를 설립해 본격적인 양자 연구를 시작했다. 2018년 스위스 양자암호 관련 기업 IDQ를 인수하고 2020년에는 양자암호난수(QRNG) 칩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QRNG 칩을 탑재한 ‘갤럭시퀀텀’ 시리즈를 출시하는 등 소비자(B2C) 영역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QRNG 칩은 ‘빛’을 이용해 완전한 난수를 생성한다. 발광다이오드(LED)로 빛을 쏘고, 같은 시간 동안 반도체 칩에 닿는 광자 수가 매번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무작위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낸 암호는 기존 유사난수생성(PRNG) 방식보다 해킹이 어렵다.

SK텔레콤의 양자 암호통신 기기의 모습 /SK텔레콤 제공

◇ AI, HW·SW 패키지 공급망 구축하려는 SKT

SK텔레콤이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두는 것은 기존 통신 사업처럼 국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모델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 시장과 B2B(기업 간 거래) 영역을 공략할 수 있어 외연 확장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AI 반도체, 양자 반도체 등이 주력 사업인 통신을 비롯해 신사업은 초거대AI, UAM, 금융, 커머스등과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2023년을 AI 컴퍼니로의 도약과 전환 비전 실행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실제 SK텔레콤은 거대언어모델(GPT-3)을 바탕으로 한국어 특화 버전을 자체 개발,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가 자유 주제로 한국어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B2C AI 서비스 ‘에이닷’을 공개했다.

SK텔레콤의 AI컴퍼니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AI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대용량의 학습과 사람의 두뇌처럼 빠르게 연산하고 결괏값을 내놓는 초거대 AI 시스템은 저전력에 속도가 빠른 AI 반도체가 필요하다. 기존 컴퓨터 시스템에서 초거대 AI를 운용할 경우 병목현상에 따른 성능저하, 발열, 전력 사용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가 AI 반도체를 완성할 경우, SK텔레콤의 초거대 AI 사업과 클라우드 사업에 적용해 시장성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라며 “데이터 센터 구축 사업을 펼치는 SK C&C도 AI 반도체 수요가 있기 때문에 SK그룹 전체의 ICT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나아가 AI 반도체 등 하드웨어에서 알고리즘, 애플리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소프트웨어까지 AI 서비스에 대한 통합 솔루션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