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개인 간 거래(C2C)를 낙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10월 북미 최대 패션 C2C 커뮤니티 포쉬마크를 2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11월 손자회사 크림에 500억원을 출자했다. 한국(크림), 일본(빈티지시티), 유럽(베스티에르콜렉티브), 북미(포쉬마크)를 잇는 거점 네트워크를 구축해 세계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다. 네이버는 미국 아마존이 장악한 기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과 달리 C2C 시장에는 아직 ‘절대 강자’가 없다는 점에 주목, 기회를 엿보고 있다.
28일 국내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크림은 내년 1월 약 200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유치, 총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투자업계에서는 현재 약 9200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크림이 이번 시리즈C를 완료하면 설립 3년 만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기업에 등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크림은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지난 2020년 5억원을 출자해 세운 C2C 플랫폼으로, 지난해 1월 물적 분할을 통해 독립했다. 주거래 품목은 한정판 스니커즈, 시계 등 패션용품에서 게임 카드 등 고가 수집품까지 다양하다.
크림은 네이버가 전폭적인 지원을 이어가는 소수 계열사 중 한 곳이다. 지난달에는 네이버의 직접 투자도 받았다. 당시 업계는 스노우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네이버가 전면에 나서자 최수연 대표가 앞으로 C2C를 통해 커머스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최 대표는 올해 1분기 크림을 네이버 커머스 사업으로 편입하고, 2분기 실적발표에서 ‘글로벌 수준의 거래 수수료 합리화’ 계획을 밝혔다. 지난 2년간 사용자를 모으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판매자와 구매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본격적인 수익화에 나설 것이란 설명이었다. 이후 네이버 커머스 사업의 3분기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1% 성장한 10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크림과 스마트스토어를 포함한 네이버 플랫폼 내부 거래액은 7조1000억원으로 18.2% 증가했다.
최 대표가 최근 네이버 역사상 최대 규모 ‘빅딜’인 포쉬마크 인수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본거지인 한국 C2C 사업의 몸집을 불리는 동시에 북미라는 새로운 거점 개척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C2C 시장 성장 둔화 및 네이버 재무 악화 우려는 ‘조기 인수’ 카드로 대응했다. 최 대표는 2023년 4월로 제시했던 포쉬마크 인수 마감 일정을 같은해 1월로 3개월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인수 작업이 끝나면 포쉬마크는 독립된 사업을 운영하는 네이버의 계열사로 편입되며, 북미 및 호주와 인도 등에서 포쉬마크 경영진이 동일한 브랜드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사업을 할 예정이다. 네이버 연결실적에 편입되는 시기는 내년 상반기로 예상하고 있다.
네이버는 북미에 앞서 일본에서는 빈티지시티를 성장시키고, 유럽에서는 베스티에르콜렉티브에 투자했다. 크림과 같은 해 사내 스타트업으로 출범한 빈티지시티는 올해 7월 기준 다운로드 수 82만건, 등록 상품 수 11만개를 기록했다. 등록 점포 역시 출시 초반 41개에서 451개로 늘어나는 등 이례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성숙 네이버 유럽사업개발 대표가 최고경영자(CEO) 시절 투자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베스티에르콜렉티브는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돼 현재 전 세계 80여개국에 23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는 올해 7월 상륙했다. 막시밀리안 비트너 CEO는 10월 방한해 네이버 경영진과 협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크림을 통한 해외 기업 투자도 늘리고 있다. 올해에만 313억원을 들여 총 10건의 투자를 집행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일본 소다의 지분 약 15%를 확보하면서 중국, 싱가포르, 홍콩으로의 간접 진출 발판을 닦았다. 소다는 현재 중국 나이스와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싱가포르에 오프라인 스토어를 여는 등 사업 확장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네이버가 최근 관심 있게 보는 투자처는 인도네시아(PT카루니아), 말레이시아(셰이크핸즈), 태국(사솜컴퍼니) 등 동남아시아 신흥 시장이다. 네이버는 궁극적으로 크림을 ‘아시아 크로스보더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C2C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계속해서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넓혀갈 방침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중고거래 시장은 2021년 270억달러(약 34조원)에서 2025년 770억달러(약 98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단, 이를 지켜보는 업계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포쉬마크의 흑자전환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금을 더 쏟는 건 무리라는 평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 종가 기준 네이버는 52.84% 하락하며 올해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12개 종목 중 최악의 주가 흐름을 보였다. 대규모 서비스 장애 사태 등 악재로 주가가 급락했던 카카오(52.36%)보다 하락폭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