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카카오가 경기 침체에도 미래 핵심 성장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불황으로 거품이 빠진 만큼 오히려 ‘진짜’를 골라내기 수월해졌다는 판단에서다. 네이버는 커머스와 콘텐츠, 카카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각각 ‘기술력을 기반으로 혁신을 이룬’ 스타트업들에 주목했다.
22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올해 자사 스타트업 양성조직인 D2SF를 통해 총 26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신규 투자 17건, 후속 투자 9건으로 총투자 금액은 167억원이다. 규모 면에서는 지난해(31건)보다 5건 줄었지만, 투자액(177억원)은 크게 줄지 않았다. 카카오의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인 카카오벤처스는 올해 총 43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규모는 전년(48건) 대비 소폭 줄었지만, 신규 투자는 28건에서 31건으로 늘었다. 총투자 금액은 500억원이다.
투자업계 전반이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위축된 상황에서도 양사가 활발한 투자 기조를 유지한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1조25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줄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24.3% 증가한 약 4조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보였었다. 지난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공개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스타트업 창업자 200명을 포함한 업계 관계자 900명은 82%가 전년 대비 올해 투자 시장이 혹한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양사는 지금의 한파가 ‘옥석 가리기’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이다. 기술력이 입증된 스타트업은 시장 환경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D2SF가 2015년 출범 이후 투자한 100여개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현재 97%에 달한다. 초기 단계 투자의 경우 글로벌 경제의 여파가 적기도 하다. 카카오벤처스는 내년에도 ‘극초기 투자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개인 맞춤형 웰니스(Wellness) 플랫폼을 개발 중인 ‘가지랩’이 한 예다. 양사의 투자를 모두 받은 가지랩은 지난달 13억원 규모의 브릿지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 라운드에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매쉬업엔젤스,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가 신규 투자자로 참여했고, 기존 투자자인 카카오벤처스도 후속 투자를 이어갔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가 최근 투자한 기업 가운데 한국신용데이터(캐시노트), 시프트업(게임) 등은 올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두나무, 당근마켓에 이어 총 4곳이 유니콘으로 성장한 것이다. 네이버가 지난 2017년에 투자한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 플랫폼 크라우드웍스는 파파고, 클로바 등 네이버 50여개 서비스와 협업하며 35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양사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내년 1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무대에도 대거 오른다. 이중 혁신상 수상 기업은 10개사가 넘는다. 네이버의 경우 투자 스타트업 18개사가 참여하는데, 이는 2년 전인 CES 2020 때보다 정확히 세 배 늘어난 숫자다. 대부분 AI·모빌리티·디지털트윈 분야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이다. 18개사 가운데 8개사는 혁신상을 받았다. 카카오의 투자를 받고 이번에 CES 2023에 참가하는 스타트업 11개사 중에는 3개사가 혁신상을 받았다. 모빌리티와 증강현실(AR)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스타트업이다.
네이버는 올해 커머스·콘텐츠 분야 스타트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했다. 이 분야를 중심으로 외형을 확장하고 수익을 끌어올리겠다는 최수연 대표의 복안이 담겼다. 실제로 네이버는 커머스 스타트업인 온더룩(패션 콘텐츠 플랫폼), 유니드컴즈(AI 마케팅 자동화) 등과 현재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가우디오랩(AI 기반의 오디오 솔루션), 지이모션(3D 패션 시뮬레이션 엔진) 등 콘텐츠 스타트업과는 새 먹거리로 점찍은 메타버스 사업을 고도화하기 위해 제페토 등 기존 서비스에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카카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위주로 투자했다. 올해 투자한 43개 스타트업 중 디지털 헬스케어와 서비스 분야가 16개로 가장 많았다. 김치원 상무와 정주연 심사역을 영입하면서 해당 분야 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김 상무는 서울대학교병원 전공의 출신으로 맥킨지, 서울삼성병원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현재는 서울와이즈재활병원 원장직을 겸하고 있다. 정 심사역은 지난해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하기 전까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근무했다. 카카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3월 사내독립법인(CIC)이던 카카오헬스케어를 신규 법인으로 분리한 뒤, 12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자금을 몰아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