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사 쇼핑·동영상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 수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네이버가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네이버의 이런 행위가 시장지배적지위를 남용한 것이란 법원의 판단에 따라 회사의 근간인 검색 서비스 전반의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1부(최봉희 위광하 홍성욱 부장판사)는 전날 네이버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1월 네이버가 2012년 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자사 쇼핑몰 플랫폼 서비스인 ‘스마트스토어’(2012년 ‘샵N’, 2014년 ‘스토어팜’)를 지원하기 위해 ‘네이버쇼핑’ 상품 검색결과 노출순위를 제휴업체에게 유리하게 조정한 것으로 보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①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중 거래 조건 차별 행위 ②불공정거래행위 중 부당한 차별취급행위 ③불공정거래행위 중 부당한 고객유인행위를 적용해 시정조치와 함께 과징금 266억3500만원 납부를 명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네이버는 2012년 3월 샵N 출시를 전후로 같은해 2~5월 G마켓·11번가·옥션·인터파크 등 경쟁 오픈마켓의 네이버쇼핑 검색결과 노출순위에 1보다 작은 0.975, 0.99 등을 부여했다. 이에 경쟁 오픈마켓 상품의 노출순위가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네이버는 이 밖에도 2012년 7월 네이버쇼핑 검색결과 페이지 내 샵N 입점상품의 비율을 15~20%로 보장하는 등 제휴업체에 특혜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1월에는 샵N 입점상품에 대해서만 검색결과 노출순위 결정 요소 중 판매지수에 1.5배의 가중치를 부여했다. 서비스명을 스토어팜으로 변경한 뒤인 2015년 4월에는 네이버쇼핑 검색결과 페이지 내 전체 상품에서 제휴업체 상품이 차지하는 개수의 제한을 8개에서 10개로 상향 조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네이버가 이처럼 알고리즘을 조정한 뒤 네이버쇼핑 내 스마트스토어 점유율은 PC 기준 2015년 3월 12.68%에서 2018년 3월 26.2%까지 급상승했다. 같은 기간 모바일 기준 점유율은 18.20% 증가했다. 네이버의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도 2015년 4.97%에서 2018년 21.08%까지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A사(27.03%→21.78%), B사(38.30%→28.67%), C사(25.97%→18.16%), D사(3.15%→2.57%) 등 경쟁사의 점유율은 떨어졌다. 2012년 10월 1만3908개였던 스마트스토어 제휴업체 수는 2018년 6월 34만9786개로 25배 이상 늘었다.

네이버 커머스 부문을 이끄는 이윤숙 포레스트 사내독립기업(CIC) 대표는 지난 2020년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진행한 공정거래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네이버에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부당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네이버는 이에 대해 ‘소비자의 효용을 증진하기 위해서였다’ 등의 주장을 하며 지난해 3월 공정위의 처분을 다투는 소를 제기했다. 네이버는 당시 ‘알고리즘 변경은 검색 엔진에서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다’ ‘자사 쇼핑 서비스는 검색 우대가 아닌 자체 경쟁력으로 컸다’고도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네이버의 알고리즘 조정 행위에는 스마트스토어를 지원하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이 인정된다”며 네이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일각에선 이번 판결로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은 물론 검색 서비스 전반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부터 검색 서비스를 새단장하고 있다. 직접적인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는 서비스는 아니지만, 품질 향상을 통한 이용자 확대는 회사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의 동력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네이버가 오는 2024년까지 전면 확대 도입 방침을 밝힌 인공지능(AI) 검색 서비스 ‘에어서치’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통합검색은 이미지·동영상·쇼핑·지식iN 등을 정형화된 컬렉션 단위로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반면, 에어서치는 ‘스마트블록’ 단위로 검색결과를 제공한다. 스마트블록은 ▲이용자가 원하는 가장 정확한 답을 제공하는 ‘정답형’ ▲취향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탐색할 수 있는 ‘탐색형’ ▲이용자의 행동에 따라 변화하는 ‘반응형’ ▲예상치 못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발견형’ 블록으로 나뉜다. 회사는 올해 안으로 최소 300만개 이상의 스마트블록을 추가할 방침이다.

네이버가 자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검색 결과 구현 속도를 3G 네트워크 환경에서 HTTP/3와 HTTP/2를 각각 적용해 비교한 결과. /네이버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 강화 일환으로 인프라 투자도 단행했다. 지난달 국내 플랫폼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HTTP/3을 도입했다. HTTP/3은 앱·브라우저와 웹 간 데이터 교환을 위한 3세대 표준 프로토콜(통신 규약)이다. 브라우저와 웹서버 간 최초 연결 시간을 단축, 데이터가 이용자에게 도달하는 시간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는 현재 일부 이용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인 HTTP/3을 베타 테스트를 거쳐 연내 전체 사용자 대상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 관계자는 “해당 건은 회사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제기한 행정 소송인 만큼 일부에서 나오는 지적처럼 사업 방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변화하는 정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할 의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 계획에 대해서는 “상고의 기회가 남아 있어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