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최근 일본을 깜짝 방문했다. 쿡 CEO의 이번 방문은 일본의 부품 공급업체나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와의 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쿡 CEO는 팬데믹 이전에도 이런 이유로 여러 차례 일본을 찾았지만, 한국은 CEO가 된 이후 10년간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 지난 9월 출시된 아이폰14가 일본 등 다른 해외시장보다 한국 가격이 유독 많이 인상되는 등 애플의 ‘한국 홀대’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이어서 쿡 CEO의 행보가 주목된다.
◇ 팀 쿡, 소니 등 협력업체와 도쿄 애플스토어 방문
14일 쿡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을 방문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번 일본 방문에는 그렉 조스위악 애플 글로벌마케팅 부사장도 동행했다. 팀 쿡은 이번에 일본을 방문한 사실을 자신의 트위터에 상세하게 올렸다. 그는 전날 구마모토성을 방문한 뒤 “일본에 다시 돌아와 기쁘다”며 “구마모토성을 방문해 그들이 랜드마크를 복원하기 위해 한 엄청난 작업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해당 게시물을 올린 이후에는 조스위악 부사장과 함께 구마모토현립 초등학교에 방문한 사진을 올리면서 “구마모토현립 초등학교에서는 창의력과 기술을 수업에 적용하기 위해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소니 공장을 방문해 “애플은 아이폰에 세계 최고의 카메라 센서를 탑재하기 위해 소니와 10년 넘게 협력해 왔다”며 “끊임없는 혁신을 위한 서로 간 협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쿡 CEO는 도쿄로 이동해 긴자와 오모테산도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방문했고, 코나미라는 일본 게임회사와 일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베르디(VERDY)를 들렀다. 자신이 만난 사람과 업체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쿡 CEO가 직접 일본을 방문해 협력업체와 매장을 둘러본 것은 그만큼 일본 시장이 애플에 중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컨설팅업체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애플 앱스토어가 제공하는 상품·서비스 매출 총액에서 일본은 346억달러로 중국(3000억달러)과 미국(1750억달러)에 이어 3위 시장인 것으로 집계됐다.
애플도 쿡 CEO 방문 일정에 맞춰 “애플이 일본 공급망 확대를 위해 2018년부터 5년간 1000억달러(약 131조원) 이상을 지출했다”며 “아이폰 전용 앱 서비스 등을 통해 일본에서 총 100만명에 달하는 고용창출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애플과 거래 관계에 있는 일본 업체들은 1000여개에 이른다”며 “소니와 같은 다국적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워치 밴드의 일부를 제조하는 이노우에 리본 공업 등 중견·중소기업과도 제휴하고 있다”고 했다.
닛케이 등 일본 매체들도 이날 “쿡 CEO가 직접 일본에 방문한 것은 일본의 부품 업체나 앱 개발자와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일본 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앱스토어 규제 등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한국은 10년간 한 번도 방문 안 해
쿡 CEO가 일본을 방문한 이날 경북 포항에 있는 애플 제조업 연구개발(R&D) 지원센터에서 디벨로퍼 아카데미 교육 1기 수료식이 열렸다. 여기에는 존 서 애플 핵심 기술 부문 시니어 디렉터, 고든 슈크윗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총괄 디렉터, 마크 리 애플코리아 사장이 오는 데 그쳤다.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2013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등 전 세계 17개 지역에 개설됐는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처음이다.
쿡 CEO는 CEO가 된 이후 10년이 넘도록 한국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때는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2010년 권영수 당시 LG디스플레이 사장(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과 함께 경기 파주에 있는 LG디스플레이 공장에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다. 나무 이름도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아이맥’으로 애플과 LG디스플레이와의 끈끈한 관계를 다짐한 셈이다.
그는 2016년과 2019년에도 일본은 방문했지만 한국을 들리지 않았다. 특히 2016년에는 중국을 거쳐서 일본을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과 든든한 파트너인 일본을 찾았지만 한국은 쏙 빼놓은 것이다. 2016년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닌텐도, 일본 이동통신사 경영진을 두루 만나며 콘텐츠와 모바일 결제 분야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쿡 CEO의 방일 직후 일본에서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애플 페이’가 출시됐다. 한국 시장에서는 이로부터 6년 후인 지금에서야 애플페이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 시장은 삼성전자가 꽉 잡고 있는 시장이어서 애플로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시장일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갤럭시 판매량은 70%에 육박하는 반면, 아이폰 판매량은 20%대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한국 시장만 홀대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쿡 CEO의 이런 행보는 좋게 읽히지만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아이폰14가 출시됐을 때 애플은 미국 가격은 동결하되 각국 환율 상황을 적용해 가격을 책정했는데, 한국 시장에서 유독 아이폰14가 비싸게 책정됐다. 애플은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을 1420원으로 적용해 가격을 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이폰14 한국 가격이 공개됐던 9월 초 환율은 1380원대였다. 아이폰14 프로(128GB) 기준 한국 가격은 155만원인 반면 같은 날 공개된 일본 판매 가격은 14만9800엔, 한화로 약 143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