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어벤져스’를 연출한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AGBO의 최대 주주가 넥슨으로 바뀌었다. 최근 폐막한 국내 최대 게임 축제 지스타에서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가 게임 퍼블리싱(유통)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했다. 게임과 영화, 드라마, 음악, 웹툰 등 콘텐츠 산업을 구성하는 주요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BTS, ‘오징어 게임’ ‘미나리’ ‘기생충’ 등이 세계 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K콘텐츠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식재산권(IP)을 연결 고리로 한 콘텐츠 산업의 영역 경계 허물기는 세계로 나가는 K콘텐츠에 추가 성장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K게임은 이미 한국 콘텐츠 산업 수출의 69.5%를 차지하고, 가전과 이차전지 수출 규모도 각각 뛰어넘어 한국의 주력 수출 업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비욘드 게임(Beyond Game·게임 생태계 확장)이라는 주제로 지역과 국가는 물론 각 영역의 경계까지 무너뜨리는 무한경쟁 시대 속 K게임의 행보를 조명한 이유다. K콘텐츠를 넘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판도를 흔들 K게임의 여정이 시작됐다. [편집자주]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 2022′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콘솔 게임(모니터나 TV에 연결해 즐기는 게임)’이었다. 과거 PC만으로 빽빽하게 찼던 게임 신작 시연 공간에는 닌텐도 기기가 함께 놓여 있었고, 수백 명의 게임 이용자가 줄을 선 신작 PC·콘솔 게임 시연 부스의 대기 시간은 2시간에 달했다. 국내 게임사가 PC, 모바일, 콘솔 등을 아우르는 ‘멀티 플랫폼화’를 지향한다는 점이 지스타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국내 게임사의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는 장수 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다. 엔씨소프트는 1998년 처음 선보인 게임 리니지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리니지2(2003), 리니지M(2017), 리니지2M(2019), 리니지W(2021) 등 다양한 후속작을 내놓았다. 그러나 PC·모바일 게임이라는 장르적 한계에 머무른 채 전작의 지식재산권(IP)만을 ‘자기 복제’하고 있어 다양한 스토리 기반의 콘솔 게임을 즐기는 해외 이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엔씨소프트는 그간 흥행보증수표가 됐던 PC, 리니지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해외 게임 이용자에게 익숙한 다양한 콘텐츠의 스토리를 참고해 게임 스토리를 개발하고 콘솔 기기로도 즐길 수 있는 게임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엔씨소프트의 신(新)IP, 멀티 플랫폼에 대한 포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임은 회사가 2024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PC·콘솔 슈팅 게임 ‘LLL’이다. LLL은 폐허가 된 서울에 등장한 돌연변이를 소탕하는 내용의 공상과학(SF) 기반 게임으로 사격, 이동, 탐색 등의 요소가 담겼다. 이용자는 다른 게임 이용자와 자유롭게 협력하며 로봇, 헬기 등 다양한 이동 수단에 탑승해 특수 병기를 조작하며 전략적 전투를 펼친다.
11월 16일 LLL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과 서면 인터뷰를 했다. 배 부사장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함께 초창기부터 리니지 개발을 주도한 1세대 창립 멤버이자 김 대표의 ‘오른팔’이다. 그는 앞서 리니지2 개발 총괄을 맡아 게임 흥행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최근 국내 게임 업계 트렌드는 멀티 플랫폼이다. 엔씨소프트가 한국 게임 업계 내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유인가.
“현재 PC와 콘솔 플랫폼 시장의 성장률은 낮아지는 반면 두 플랫폼의 차이는 거의 없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두 플랫폼의 선호 장르가 서로 달라 플레이 경험과 개발 방법론의 차이가 컸다. PC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많은 키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콘솔은 방향 키와 적은 수의 버튼을 주로 사용했었다. 현재는 일부 게임을 제외하면 대부분 PC 게임이 사용 키를 줄이는 방법으로 패드(컨트롤러)를 내세워서 대부분의 PC나 콘솔 게임이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갖게 됐다. 콘솔과 PC가 같은 베이스의 운영체제(OS)를 가지게 되어 개발이 용이해진 점과 단일 게임의 개발비가 크게 상승하면서 한 개의 타이틀로 여러 플랫폼에 대응해야 하는 비즈니스적인 면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LLL 역시 PC·콘솔 게임으로 개발했다.”
LLL은 기존 리니지와는 다른 IP로 보인다. 어떤 IP에서 영향을 받았나.
“설정과 스토리에서는 미국 SF 문학의 대가 필립 K. 딕의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 소설 ‘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마주와 실제 설정 적용에 많이 참고했다.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좀비 영화 ‘나는 전설이다’ 같은 멸망 이후의 세계관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다.”
LLL엔 슈팅,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오픈월드, SF까지 다양한 게임의 특성이 조합됐다. 이런 영역 확대에 나선 이유는.
“슈팅 액션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SF 테마에 오픈월드를 도입했다. 좁은 곳이 아닌 넓은 곳으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게임할 수 있도록 ‘오픈월드’와 ‘MMORPG’를 한 게임에 모두 넣었다. 이런 조합은 신규 시장 진출, 특히 해외 시장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IP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성공한 IP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어떤 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넘어 애착 관계까지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미키 마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키 마우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미키 마우스는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거의 현실에 실존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기에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미키 마우스의 세계관은 확장과 영속성이 보장된다. IP를 다루는 디즈니 역시 미키와 친구들이 실제 있는 것처럼 다루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종의 ‘시뮬라크르’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게임 IP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사용자가 특정 게임의 플레이가 단순히 재밌다는 것을 넘어서 게임 구성 요소, 스토리, 세계관에 높은 이해도를 가지게 되면 그 게임IP는 단순한 킬링 타임용 콘텐츠를 넘어서 관심과 애착의 대상이 되고 디즈니 월드처럼 확장과 긴 생명력을 갖게 된다.”
엔씨소프트는 LLL도 리니지나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처럼 하나의 IP로 발전시킬 예정인가.
“LLL은 리니지나 블레이드 & 소울 레볼루션 등과는 다른 시장에 지향점이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독립된 IP로 만드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LLL은 기존 판타지 기반의 MMORPG가 아닌 슈팅 게임 시장, 한국과 아시아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개발됐다.”
그만큼 해외 진출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해외 진출은 엔씨소프트의 게임 비즈니스 초창기부터 시작했던 사업이다. 처음 출시했던 PC용 리니지부터 한국 서비스 직후 해외 서비스를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해외 시장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글로벌 해외 시장을 목표로 했으며, 글로벌 출시를 고려하고 있다.”
10년 뒤 엔씨소프트는 어떤 게임 회사가 돼 있을까.
“독립된 플랫폼이나 단일 서비스가 아니라 여러 플랫폼과 서비스가 통합된 형태의 새로운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가 미래엔 나타날 것이다. 이때 엔씨소프트는 큰 영향력과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회사가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게임 플레이를 재밌게 만들 뿐 아니라 이용자가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팬’을 만들겠다.”
plus point
‘슈팅’ ‘MMORPG’ ‘오픈월드’…게임 흥행 키워드 다 넣었다
LLL에 게임 업계 이목이 쏠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엔씨소프트가 슈팅, MMORPG, 오픈월드 등 다채로운 게임의 특성을 결합해 새로운 IP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먼저 슈팅 게임이란 적의 공격을 피하며 무기를 활용해 적을 가격하는 게임을 뜻한다. 1980년대 유행했던 고전 게임 갤러그나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MMORPG 게임이란 게임 속 등장인물의 역할을 수행하는 형식의 게임인 역할수행게임(RPG)의 일종으로, 온라인으로 연결된 다수의 이용자가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즐기는 게임을 말한다. MMORPG 게임의 특징은 마법사, 도둑 등 자신의 분신을 선택해 게임 속 가상세계를 체험하며 다양한 전투, 임무 등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MMORPG 게임은 넥슨 바람의나라와 메이플스토리, 엔씨소프트 리니지 등이다.
오픈월드 게임은 이용자가 게임 내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게임 내 이용자의 자유도가 극대화한 형태로, 이용자는 게임 내 거대한 공간을 이동 제한 없이 돌아다니고 게임 내 시스템을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용자가 레고처럼 생긴 아바타를 만들어 직접 게임을 개발하거나 다른 이용자의 게임에 참여하는 창의적인 활동이 가능한 로블록스가 대표적인 오픈월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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