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쿠팡이 본격적인 배송 대결을 펼친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물류 경쟁력을 확보한 양사는 ‘빠른 배송’을 넘어선 ‘도착일 보장’을 앞세워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의 새 판을 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커머스 시장을 놓고 양사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절대 강자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스마트스토어 사업자들에게 오는 14일부터 주문 기록, 물류사 재고 등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에게 정확한 상품 도착일을 보장하는 ‘네이버도착보장’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공지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업자들이 고객에게 약속한 도착일 안에 상품을 배송할 수 있도록 네이버가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네이버는 예정일보다 배송이 늦어질 경우 고객에게 네이버페이 1000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보상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서비스 우선 적용 상품군은 식품, 세제 등 일상소비재다. 네이버는 오는 2025년까지 이 상품군 전체 주문 건수의 50%에 도착일 보장 서비스를 적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이버 측은 “사업자가 내야 할 서비스 사용 수수료는 아직 책정하지 않았지만, 프로모션 등을 통해 최대한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라며 “고객에게도 서비스 이용에 따른 추가 요금은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해당 서비스 출시를 위해 지난 2년간 CJ대한통운, 4PL 스타트업과 함께 ‘온라인 풀필먼트 데이터 플랫폼’을 고도화해왔다. 풀필먼트는 물류 전문업체가 판매자를 대신해 입고, 포장, 배송 등 고객이 주문한 상품이 물류창고를 거쳐 배송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4자 물류’를 뜻하는 4PL은 물류 업무를 외부 물류 전문 기업에 맡기는 형태인 3자 물류(3PL)에 컨설팅 및 IT 서비스 제공을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CJ대한통운은 현재 곤지암, 용인, 군포 등 전국 9개의 네이버 중심 풀필먼트 센터를 운영하고 있거나 열 예정이다. 올해 10월 기준 6개 센터에서 240여개 네이버 사업자를 대상으로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가 이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참고한 모델은 ‘에셋 라이트(Asset Light)’다. 아마존처럼 상품 입고부터 배송까지 전 단계를 직접 수행하는 대신 단계별로 필요한 인프라를 제휴를 통해 얻는 모델로,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창고나 부지를 마련할 필요가 없어 인프라 확장성이 높다는 평가도 받는다. 에셋 라이트를 도입한 대표적인 이커머스 기업은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이를 통해 전국 단위 물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 네트워크를 자사 데이터 플랫폼인 ‘차이니아오’로 연결해 중국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다.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등을 통해 이미 상당한 배송 수요를 확보했다는 점에 이번 서비스의 성패를 걸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수는 53만개, 브랜드스토어 수는 1200개 이상이다. 특히 브랜드스토어는 3분기 거래액 약 84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70% 성장하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시세이도 그룹의 색조 화장품 브랜드인 나스(NARS)를 비롯한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입점도 빨라지고 있다. 3분기 메종 마르지엘라와 멀버리가 브랜드스토어에 문을 열었고, 고가 리빙 브랜드인 루이스폴센과 앤트레디션도 합류했다.
네이버의 도전장에 업계의 시선은 쿠팡을 향하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의 판도가 기울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네이버와 쿠팡은 지난해 각각 17%, 13%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접전을 벌였었다. 더욱이 쿠팡은 네이버보다 먼저 도착일 보장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금도 배송이 늦어지면 고객에게 쿠팡캐시 1000원을 지급하고 있다. 와우 멤버십 회원이나 1만9800원 이상 주문 고객에게는 무료 배송도 지원한다. 쿠팡이 강점을 보이는 상품군 역시 일상소비재다.
업계는 물류 모델의 차이가 네이버와 쿠팡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쿠팡은 아마존과 같이 자체 창고에 미리 상품을 구입해 보관해뒀다가 주문 발생 시 직접 배송하는 ‘리테일러(Retailor)’ 모델을 택했다. 이를 위해 수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 한국 인구 70%가 쿠팡 물류센터 10㎞ 안에 거주할 정도로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쿠팡의 전국 물류 인프라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70만㎡(약 112만평)에 달한다. 올해 6월에는 한진택배에 일부 위탁했던 ‘로켓배송’ 물량을 자체 배송으로 전환하면서 배송 속도를 한층 더 높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물론 네이버의 에셋 라이트 모델과 쿠팡의 리테일러 모델 모두 한계는 있다. 네이버의 모델은 협력사에 문제가 생기면 배송 서비스 전체가 어그러질 가능성이 있다. 노조 파업 등으로 CJ대한통운이 멈춰 서면 네이버 배송 서비스는 당연히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쿠팡의 모델은 상품의 입고, 가격 결정, 발주 등을 쿠팡이 전부 결정하는 구조인 만큼 제조업체의 쿠팡 의존도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소규모 업체 입장에서는 쿠팡에 상품을 납품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사업 확장 전략을 짤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는 경쟁사와 싸워 1위에 오르는 게 아닌, 판매자에게 새로운 사업 형태를 제시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서비스 출시는 판매자가 배송 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사업에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줄 일종의 실험 역할을 할 것이란 설명이다. 네이버 커머스 부문을 이끄는 이윤숙 포레스트 사내독립기업(CIC) 대표는 이에 대해 지난달 3일 ‘네이버 브랜드 파트너스데이’ 행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손자병법에 나온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업계에선 네이버의 최종 목표가 이커머스 장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율성’을 앞세워 더 많은 판매자를 끌어들이면 시장에서 네이버가 차지하는 파이는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3분기에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쿠팡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쿠팡이 지난 8년간 6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해가면서 인프라 확충에 공을 들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모든 종류의 커머스는 결국 고객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자체 인프라를 갖췄다는 건 배송 일정에 대한 주도권을 온전히 쥐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짚었다. 그는 “네이버는 3자 물류에 기댈 수밖에 없는 ‘플랫폼’이다”라며 “주말 등 특수 상황에서 협력사 간 소통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