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 등 민주당 과방위 소속 의원들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방송법 개정안 추진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정보통신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 대상에 방송법 개정안이 포함된 가운데 법안 취지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법안 통과·소위 운영에 차질이 예상되면서 망 사용료 문제 등 과방위 핵심 현안이 뒷전으로 물러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5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망 사용료 법 관련 2차 공청회는 당초 지난 17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여야가 과방위 제2소위원장을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데다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설전까지 벌이면서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지난 15일 열린 2소위 역시 국민의힘 위원이 전원 불참하면서 파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방위 위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법 개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민정, 김영주, 박찬대, 변재일, 윤영찬, 이인영, 이정문, 장경태, 정필모, 조승래 위원 등은 성명을 통해 “오늘부터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혁에 착수한다”며 “국민이 주인 되는 공영방송의 새 장을 열어야 할 때다”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5인 규모 운영위원회로 개편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운영위원은 국회와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방송 관련 단체 등이 추천하도록 했다. 또 공영방송 사장 선임 땐 전체 운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수 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성중 과방위 여당 간사가 주축이 돼 발표한 성명에서 국민의힘 위원 일동은 “운영위원을 추천하는 방송 단체, 시청자위원회, 노조 등 방송 직능 단체가 친(親)민주당, 친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언론노조다”라며 “방송법 개정안은 민노총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 장악 법안’이고 악법 중의 악법이다”라고 했다.

유튜브가 지난 9월 20일 자사 한국 블로그에 올린 글. 유튜브는 이 글에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망 사용료 법에 반대한다며, 이용자들의 관련 서명 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유튜브 한국 블로그 캡처

이번 여야 공방을 지켜보는 업계의 마음은 무겁다. 새로운 정쟁의 시작으로 국회에 계류된 망 사용료 관련 법안들이 묻힐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이들 법안은 구글, 넷플릭스 등 외국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의 인터넷 망을 빌려 쓰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적정하게 지급하지 않는 점에 주목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는 망 접속료와 별도로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망 사용료 논의는 과방위가 지난 9월 20일 1차 공청회를 열면서 속도가 붙는 듯 싶었다. 그러나 공청회가 국민의힘 위원들의 불참 속에 반쪽짜리로 진행된 데다,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위원들 역시 준비가 미흡해 망 사용료 개념 정의 및 CP와 ISP 간 입장 차만 재확인하다 끝나면서 ‘김 샜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국민의힘 측은 공청회가 여야 합의 없이 열렸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업계 일각에선 야당이 내부 노선을 정리하면서 망 사용료에 대한 관심을 끊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망 사용료 법을 민주당 22대 민생 입법과제에 포함시켰으나, 최근 정기국회 중점법안에서 이를 뺀 것으로 알려졌다. 망 사용료 법 통과를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재명 당 대표도 지난 10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망 사용료법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고 말을 바꿨다.

업계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를 해야 공청회 준비에 진척이 있을텐데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며 “국민의힘으로부터 ‘단독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1차 공청회를 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요즘 한 발 뒤로 물러나는 분위기라 애가 탄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정치적 사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망 사용료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몇년에 걸쳐 마련된 법안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 아쉽다”고 했다.

망 사용료에 해당하는 ‘인터넷 전용회선’의 국내 시장 규모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11년 5705억원에서 2020년 4913억원이 됐다. 영상 콘텐츠에 대한 인기가 오르면서 폭증세를 이어가는 트래픽 양과 상반된다. 사업자별 관련 매출액은 2020년 기준 SK브로드밴드 1421억원, KT 1349억원, LG유플러스 1149억원이다. 3사는 2020년 연간 매출 18조6247억원, 23조9167억원, 13조4176억원을 기록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구글과 넷플릭스는 지난해 10~12월 국내 트래픽의 각각 27.1%, 7.2%를 차지하며 1, 2위를 기록했다. 그 뒤로 메타(3.5%) 네이버(2.1%) 카카오(1.2%) 순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망 사용료 법이 국내 통신사들의 ‘갑질’에서 출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통신사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한국에 처음 상륙한 시점에서 외국 빅테크들에게 망 사용료를 요구했다면 특정 서비스의 성장을 제한했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CP들은 막강한 플랫폼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미 우월한 지위를 손에 넣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