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요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100%를 넘나들던 가동률은 90%대 초반으로 내려왔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파운드리 주문량은 6개월에서 1년여를 앞서갈 정도로 한 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넘었으나, 지금은 여유가 있는 상태라고 한다. 품귀를 빚었던 일부 품목도 생산 적체가 해소되고 있는 중이다. 인플레이션, 각국 긴축정책, 지정학적 위기 등 불안한 거시경제 속에서 전자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14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최근 스마트폰, PC·노트북, 태블릿PC, TV 등 완성품(세트) 재고 수준은 6개월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기술(IT)기기 소비 수요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이들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재고 수준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반도체 업계 연간 누적 재고량은 지난 1분기와 비교해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수요 감소로 파운드리 공장(팹) 가동률도 내림세다. 트렌드포스는 지난 2년여간 100%대를 유지하던 8인치(200㎜) 웨이퍼 팹 가동률은 하반기 90~95%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8인치 웨이퍼 파운드리는 보통 자동차용 반도체(MCU), 가전용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에 활용된다. 일부 팹은 가동률이 90% 이하로 하락한 곳도 있다고 한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통신칩 등을 만드는 12인치(300㎜) 웨이퍼 파운드리 팹 가동률도 하반기 95%로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글로벌 파운드리 평균 가동률이 3분기 99.2%에서 4분기 86%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파운드리 주문량 감소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긴축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는 올해 초부터였지만, 당시는 이미 지난해 수주한 주문량으로 버티던 때였다. 그러다 하반기부터 주문량이 줄기 시작했다.
중국이 코로나19 봉쇄를 펼친 영향도 있다. IT 기기 공장이 즐비한 중국은 반도체 수요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특히 중국은 8인치 파운드리 생산 반도체의 주요 수요국으로, 코로나19 봉쇄로 완성품 제조에 차질을 빚다 보니, 이곳에 쓰이는 반도체 재고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주문 취소도 종종 나타나는 중이다.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와 2위 UMC는 최근 주문 취소로 생산능력이 감소했다. 디지타임스 등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주문량이 올해 초보다 40~50% 줄었다. 제이슨 왕 UMC 공동대표는 최근 3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급등하는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으로 소비자와 기업이 지출을 축소하면서 칩 수요가 몇 개월 동안 급감했다”며 “4분기에도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수요 약세가 지속돼 역풍을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의 수요 감소가 실적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본다. 그래도 아직 소화할 주문량이 남아있는 덕분이다. 내년부터 파운드리 한파가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올해 실리콘 웨이퍼 출하면적은 146억9400㎡로 전년 대비 4.8% 성장하지만, 내년에는 146억㎡로 0.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웨이퍼 출하량 감소는 코로나19 국면 들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