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택시 호출 시 목적지가 표시되지 않는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택시 호출 플랫폼 업계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콜 골라잡기’가 사라지면서 택시 대란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과 기사들의 콜 수락률이 떨어지면서 승객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9일 모빌리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플랫폼 택시에 목적지를 미표시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플랫폼 업체들은 목적지 표시 여부를 자율적으로 정했다. 국토부가 개정안을 추진할 경우 플랫폼 택시는 승객의 목적지를 미리 확인해 콜 골라잡기를 할 수 없다.
목적지를 미표시할 경우 콜 골라잡기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승객이 호출하는 순간 택시 기사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알 수 없다. 택시 호출을 가맹 택시에 강제하는 ‘강제 택시’와 달리 택시 기사는 콜을 받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만, 목적지를 알 수 없어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택시 승차 거부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진행한 애플리케이션(앱) 택시 운영 조사를 보면 평일 심야 시간 장거리 호출 성공률은 단거리 호출 성공률 대비 2배 가까이 높았다. 택시 기사들이 요금이 많이 나오는 장거리 호출만 골라 태운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다만 택시 호출 플랫폼 업계에서는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에 대한 의견이 나뉜다. 카카오는 카카오T 블루와 일반 부스터 호출 등에 목적지를 미표시하면서 사실상 목적지 미표시에 동참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발족한 모빌리티 투명성 위원회도 “단거리 콜 대비 장거리 콜의 성사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라며 “목적지가 표시되는 일반택시는 장거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업계 2위 우티는 목적지 미표시와 관련해 신중한 입장이다. 택시 대란의 원인인 부족한 택시 공급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법으로 목적지 미표시를 강제할 경우 콜 수락률이 떨어지면서 승객과 택시 기사 모두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나서 법으로 규제할 경우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택시와 플랫폼 업계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콜 골라잡기 문제를 정부가 법으로 강제할 경우 승객과 택시 기사의 불편을 키워 결국 택시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 호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과거 서울시가 목적지 미표시 의무화를 추진했다가 택시 기사 반발로 철회한 적이 있다”라며 “목적지 미표시보다 강제 배차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했다.
목적지 미표시 대신 호출료 전액을 택시 기사에게 분배하고 콜을 수락할 때마다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경우 콜 수락률을 높여 콜 골라잡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티가 호출료 전부를 택시 기사에게 나눠주고, 승객을 태울 때마다 4000원(가맹 택시)을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서울시는 심야 택시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목적지 미표시 전면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백호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전날 연말연시 심야 승차난 종합대책 관련 브리핑에서 “택시 목적지 미표시는 굉장히 중요한 정책으로 제도화시킬 필요가 있다”라며 “목적지만 표시되지 않아도 택시 잡기가 수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제도 의무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