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대만 TSMC가 3㎚(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양산을 오는 4분기 말로 연기했다. 세계 최초로 3㎚ 공정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는 TSMC의 부진으로 경쟁에서 앞선다는 평가 속에 고객사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애초 지난달 말부터 3㎚ 공정 양산을 계획했지만, 생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TSMC는 “3㎚ 반도체는 4분기 후반에 양산될 예정이다”라며 “장비 배송에 문제가 생겨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으로 내년 완전 가동할 것이다”라고 했다.
반도체는 회로 폭이 미세하면 미세할수록 성능이 높아진다. 이와 동시에 소비하는 전력도 줄게 된다. 반도체 업계가 미세공정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전 세계에서 10㎚ 이하 공정이 가능한 회사인 TSMC와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3㎚ 공정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수년간 큰 투자와 기술 개발을 해왔다. 업계 1위 TSMC는 3㎚ 공정 양산을 위해 28조원을 투입하고 수천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2위 삼성전자가 먼저 3㎚ 반도체 양산에 들어가면서 체면을 구겼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새로운 공정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이 적용된 1세대 3㎚ 반도체를 처음 양산했다. 3㎚ 반도체는 기존 4㎚ 공정으로 만들어진 반도체에 비해 전력 소모는 45% 적고, 성능은 23% 향상됐다.
삼성전자가 3㎚ 양산에 성공한 뒤에도 TSMC는 3㎚ 공정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7월 TSMC는 “3㎚ 공정에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5㎚ 공정 기술 개발보다 3~4개월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TSMC는 2018년 2분기 7㎚ 공정 양산을 시작했고, 2020년 2분기에는 5㎚ 반도체 생산에 돌입했다. TSMC 3㎚ 공정의 첫 손님은 애플이 될 것으로 보인다.
TSMC 3㎚ 양산이 연거푸 지연되면서 삼성전자에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상 미세공정은 양산 안정화를 먼저 이룬 파운드리에 주문이 몰린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오는 2025년 2㎚, 2027년 1.4㎚ 공정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모두 TSMC 양산 로드맵보다 앞선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1.4㎚ 양산 시점은 2028년으로 추정돼 앞으로 몇년 간은 삼성전자가 기술력 우위를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이런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달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사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4~5㎚ 반도체는 TSMC보다 개발 일정과 성능이 뒤처졌던 것이 맞는다”라며 “하지만 고객 얘기를 들어보면 삼성의 3㎚ 공정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 역시 “TSMC는 2㎚부터 GAA를 도입한다”며 “먼저 GAA를 적용한 삼성이 확실히 유리한 점이 있다”고 했다.
기술 개발과 양산은 삼성전자가 앞섰지만, 삼성전자가 TSMC를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실제 두 회사의 점유율 격차는 상당하다. TSMC는 미세공정 외에도 구형(레거시) 공정 점유율도 높은 반면 삼성전자는 미세공정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TSMC의 노하우나 생산 능력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보다 월등한 게 사실이다”라며 “현재까지는 삼성 파운드리의 생산능력이 TSMC에 비해 뒤처져 있어 대형 고객을 확보하고 수요를 맞추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