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퍼 위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네온 가스가 사용된다. /블룸버그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필수인 원자재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여전히 1년 전보다 최대 30배 높은 값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특수 이후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감소로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 대부분이 수익 악화 위기에 빠진 가운데 원자재 부담이 지속되면서 이중고에 빠졌다.

19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에 수입된 네온·제논(크세논)·크립톤 등 필수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가장 가파르게 가격이 오른 소재는 네온이다. 네온의 9월 t당 수입 가격은 241만6900달러(약 34억6900만원)로 지난해 9월 7만4200달러(약 1억600만원)보다 약 33배 급증했다. 지난 8월에 비하면 약 12.8% 떨어진 금액이지만 여전히 1년 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네온값은 지난 5월 최고치인 t당 230만달러(약 32억8300만원)를 찍은 이후 계속 그 이상을 상회하고 있다.

제논 9월 가격은 1344만1400달러(약 193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7만4400달러(약 47억원)에 비해 약 4배 올랐다. 크립톤은 54만3600달러(약 7억8000만원)로 지난해(35만6700달러·약 5억원)보다 약 1.5배 올랐다.

그래픽=이은현

네온·제논·크립톤은 반도체 공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소재다. 네온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빛을 이용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의 주재료다. 제논과 크립톤은 회로 패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공정에 주로 쓰인다. 이 가스들은 제철 과정에서 채집되는데, 원료 상태로 국내에 들여와 정제 및 가공 과정을 거친 뒤 반도체·디스플레이 회사에 공급된다.

과거 우크라이나산(産) 네온·크립톤·제논 등 희귀가스는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자재 공급량이 확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업체들은 대중(對中) 수입 의존도를 늘렸다. 지난달 국내에 들어온 네온 10.3t 중 80%가 중국에서 넘어왔다. 우크라이나산 네온 공급량이 줄자 중국 업체들은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리는 중이다. 1t당 중국산 네온 가격은 지난달 235만6200달러(약 33억8000만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6만6500달러(약 9500만원)보다 35배 넘게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기존 공급망이 끊겨 중국산 공급을 늘리고 있다”며 “반도체 재고가 쌓이는 상황이라 원자재 수입량을 줄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값이 비싸 부담이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원자재 수급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정부와 기업은 공급망 다변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우크라니아·러시아 수입 의존도가 높은 네온 등에 할당하는 관세를 없앴다. 또 올해 중 소재·부품 개발에 8410억원, 전략 핵심소재 자립화에 184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희귀가스 개발은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분야이나 각종 리스크가 커지면서 핵심소재의 국산화가 중요해졌다”며 “지난 1월 포스코가 네온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업계에서 크립톤과 제논 가스 개발도 계속 진행 중이므로 국산화를 위해 업계 연구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산소공장에서 포스코와 TEMC 관계자들이 '네온 생산 설비 준공 및 출하식' 행사에 참석했다. /포스코 제공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포스코·반도체용 가스 제조업체 TEMC와 손잡고 국내 업계 처음으로 노광 공정에 국산 네온을 도입했다. 현재까지 국산으로 대체한 네온은 약 40%에 달한다. 회사 측은 2024년까지 네온 국산화 비중을 100%로 늘릴 예정이다. 아울러 내년 6월까지 식각 공정에 쓰이는 크립톤과 제논 가스도 국산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네온 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여 네온을 국내에서 도입할 방법을 찾았다”며 “국산화를 통해서 구매 비용도 큰 폭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된 만큼 앞으로도 수급 안정화를 위해 원재료 공급망을 강화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드시 국산화를 추구한다기보다는 공급망 다변화를 기조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국산 원자재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친 후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