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네이버와 카카오(035720)의 희비가 엇갈렸다. 3만2000개 서버가 동시에 작동을 멈춘 카카오는 카카오톡 등 대부분의 서비스가 30시간 이상 먹통이 되는 사상 초유의 ‘서비스 장애’ 기록을 세웠다. 반면, 네이버는 카카오와 비슷한 2만개 이상의 서버를 판교 데이터센터에 저장했지만 자체 데이터센터 ‘각’ 등 총 6개의 데이터센터로 트래픽을 분산시켜 복구하면서 큰 피해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 사고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대응이 달랐던 것은 ▲데이터 이중화 비율 및 여유용량 확보 ▲설비 투자 ▲경영문화 등을 꼽았다. 서버 운용에 있어 단기간이 아닌, 오랜 기간 고민하고 투자하는 철학이 달랐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이중화 여유용량 확보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결국 이 돈을 쓸지 말지는 경영진이 판단한다”며 “질적 성장을 중요시 생각했던 네이버와 외형 성장에 초점을 맞춘 카카오의 경영 문화 차이와 연결된다”고 했다.
◇ 데이터 이원화만큼 중요한 여유 용량 확보
네이버는 18일 공지를 통해 “지난 15일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검색, 뉴스, 쇼핑, 카페, 블로그, 시리즈온, 오픈톡, 스마트스토어 센터 등 일부 기능에 오류가 발생했으나 현재 모든 서비스 기능이 정상 복구돼 사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실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했던 네이버 주요 서비스의 기능 오류는 사고 발생 시점(15일 오후 3시 30분)에서 6시간 이내에 대부분 정상화됐다. 반면, 카카오는 사고 발생 사흘째임에도 메일·톡서랍·톡채널 등 일부 기능에 대한 복구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서버 운용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는 이중화 비율과 여유 용량 확보다. 카카오가 판교 데이터센터에 3만2000개 서버를 운영하면서,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취재 결과, 네이버도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판교 데이터센터에 2만개 이상의 서버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네이버도 카카오만큼 판교 데이터센터가 중요한 거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회사의 서버 운용에는 차이가 있다. 네이버는 특정 데이터센터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자체 시설인 각을 포함해 총 6개의 데이터센터에 정보를 골고루 나눠서 저장하고 있다. 이중화가 돼 있다는 의미다. 6개 데이터센터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각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의존 비율은 알 수 없으나, 만약 한 곳의 서버가 마비되더라도 나머지 5개 서버에서 복구를 할 수 있도록 골고루 배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여유 용량이다. 보통 데이터센터에 투자했을 때,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용량을 많이 채워서 쓰는 게 좋다. 하지만 네이버는 각 데이터센터의 용량을 50~60%만 사용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가 100GB(기가바이트) 용량의 데이터센터를 사용한다면, 50~60GB만 사용하고, 나머지 40~50GB는 비상 상황을 위해 여유 공간으로 남겨 둔다는 의미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이번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에서 빛을 발휘했다. 3만개 이상의 서버의 데이터를 임시로 운용할 수 있는 이른바 ‘공간’을 많이 확보해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카카오가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전원 차단으로 3만2000개의 서버가 일시에 작동을 멈췄다는 것이다. 결국 복구를 위해서는 3만2000개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다른 곳에서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자체 데이터센터가 없던 카카오 입장에서는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는 여유 용량을 찾는데 애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카오의 데이터 분산 비율도 아쉽다. 카카오는 지난 16일 오후 1시 1만2000개 서버를 복구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기와 PC용 카카오톡 서비스가 재가동됐다는 점을 봤을 때, 카카오톡의 주요 데이터가 판교 데이터센터에 많은 비중으로 저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 네이버 매출 따라잡은 카카오…설비 투자는 ‘반토막’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시설에 대한 투자 규모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는 격차가 컸다. 네이버의 최근 3년간의 설비투자(CAPEX) 총액은 1조8609억원이다. 분기별로 1500억원이 넘게 투자를 집행한 것이다. 설비투자액은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 비용이 포함된다.
반면, 카카오의 최근 3년간 설비투자액은 7285억원에 그쳤다. 분기 평균으로 600억원 조금 넘는 수준이다. 네이버에 비해 설비 투자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네이버의 실적이 좋기 때문에 투자액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 과거에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매출액 차이가 컸지만, 카카오가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격차는 좁혀졌다. 2021년 연간 매출(연결기준)을 보면 네이버가 6조8176억원, 카카오는 6조1367억원을 기록했다. 두 회사의 매출이 비슷한 수준이 됐지만, 각종 인프라 투자액은 여전히 차이가 큰 상황이다.
IT업계 관계자는 “모빌리티 등 다양한 영역으로 몸집을 키운 카카오의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돈이 없어 투자를 못 했다는 소리를 할 수 없게 됐다”며 “이번 카카오 사태는 궁극적으로 네이버와 카카오의 다른 경영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다”고 했다.
◇ 외형 확장만 관심 있던 카카오
네이버의 경영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강원도 춘천에 건설한 자체 데이터센터 ‘각’이다. 2013년 완공된 각은 약 9만대의 서버가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 프로젝트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국내 인터넷산업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책임감으로 애정을 쏟았던 프로젝트였다.
애초 땅값을 제외하고 건설에만 1500억원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2배 이상인 4000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더 많은 비용이 투자됐다. 2012년 기준 네이버의 영업이익이 5189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년 영업이익을 고스란히 데이터센터 건설에 사용한 셈이다.
당시 네이버 내에서는 “외부 데이터센터를 사용해도 된다”며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설립 비용이 상당할뿐더러 대규모 서버를 24시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운영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IT기업이 SK,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3사와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 서버를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네이버는 올해 12월 완공을 목표로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인 ‘각 세종’을 건설 중이다. 총투자액만 6500억원이다. 10만대 이상 서버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 GIO는 지난 6월 20일 각 세종 상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외부 활동에 크게 나서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리는 이 GIO가 완공식도 아닌, 상량식에 참석한 것은 그만큼 데이터센터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카카오는 어떨까. 2010년 3월 출시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대성공 이후, 4300만명의 이용자를 기반으로 금융, 쇼핑, 교통, 인증 등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통해 ‘슈퍼 애플리케이션’으로 성장했다. 현재 카카오의 계열사 수만 134개다.
하지만 과도한 확장으로 사업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골목상권 논란, 올해 초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먹튀’ 등 모럴해저드,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프리티더비(우마무스메)’ 논란, 신작 출시 연기 등 계열사 리스크가 쏟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카카오 출시 관계자는 “카카오의 경영 철학은 각자도생 구조로 계열사에서 결정한 일을 본사에서 관여하지 않고 있고, 계열사에서도 본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 구조다”라며 “결국, 각 계열사들이 경쟁을 하기 위해 수익성 위주로 경영을 하면서, 제대로 된 중장기적인 투자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