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경찰과 소방당국이 1차 감식을 했던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현장. 발화 지점인 지하 3층 전기실의 배터리가 불에 타 있다. /이기인 경기도의원 페이스북 캡처

국내 데이터센터(IDC)가 156곳에 달하지만 소방당국의 ‘화재 진압 대응 매뉴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에서 보듯 데이터센터는 전원을 차단하면 서버 다운, 서비스 장애 등 대규모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물 사용과 전력 차단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IDC뿐만 아니라, 무정전전원장치(UPS)나 대규모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대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첨단 시설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만큼, 소방관의 안전과 책임 면책 등을 위해서라도 화재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8일 소방청, 경찰 등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나 UPS, ESS와 같은 대용량 리튬이온 배터리 장치 화재 발생 시 진압을 위한 대응 매뉴얼이 별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센터나 UPS, ESS 화재 발생 시 화재 범위, 위험 수위, 어떤 단계에서 고압가스 등 소화시설을 먼저 사용하고 어느 시점에 전원 차단을 요청해 물을 사용해야 하는지 아무런 규정과 절차가 없다는 의미다.

이번 화재는 SK C&C 측이 소방당국의 요청에 따라 전력을 차단하면서 ‘디지털 재난’으로 이어졌다. 카카오 서버 3만2000개가 일시에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부분의 카카오 서비스가 먹통이 된 것이다. SK C&C와 카카오 간의 책임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전력 차단’에 대한 소방당국의 대응 매뉴얼 존재 여부가 쟁점 사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소방청은 지난 2020년 전기차 보급 대수가 급증하자 소방관의 안전 확보와 책임 면책 등을 위해 ‘전기차 화재 대응 매뉴얼’을 발표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진압을 하더라도 6~7시간 동안 감전이나 열폭발로 인한 재점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조 전 배터리 전원을 먼저 차단한다.

소방청 관계자는 “데이터센터가 전국에 몇 곳 없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활용하는 화재 진압 매뉴얼은 별도로 없다”며 “데이터센터의 경우 진압보다 고압가스 시설, 배터리 간 유격 등 소방 설비 강화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시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원 차단과 관련해 “화재가 발생하면 한국전력과 같이 출동해 상황에 따라 해당 건물이나 그 지역 전체의 전력을 차단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DB

문제는 IDC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제2의 카카오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KDCC) 등에 따르면 전국 IDC는 2000년 53개에서 2020년 156개로 늘었다. 2025년에는 188개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통 10만대 이상의 서버를 수용할 수 있는 IDC를 말하는 ‘하이퍼스케일 IDC’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그간 납축전지 위주였던 UPS도 리튬이온 배터리로 기술이 전환되고 있고, ESS 장치 보급도 빨라지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데이터센터 화재는 이번 카카오 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전기차 1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대규모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전기차 대응 매뉴얼은 있는데 데이터센터 화재 대응 매뉴얼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공 교수는 “배터리의 경우, 열폭주로 인해 물에 잠길 정도의 물로 불을 꺼야 한다”며 “소방관의 안전과 진압 과정에서의 책임 면책, 배터리 진압에 대한 교육 과정 설계 등을 위해서 절차와 규정이 담긴 대응 매뉴얼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