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가 자사 게임 지식재산권(IP)을 확장하고 게이머 팬덤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해 대체불가토큰(NFT)을 직접 발행하거나 관련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자사 게임 IP를 기반으로 다양한 캐릭터 NFT를 발행해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고, 다양한 온오프라인 혜택을 제공해 게임 NFT 홀더(투자자) 간 팬심 중심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게임사의 목표다. 게임 내 락인(lock-in·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것)효과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NFT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JPG 파일이나 동영상 등 콘텐츠에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표식을 부여하는 신종 디지털 자산이다. 고유한 번호가 NFT에 매겨졌기에 NFT가 수십번 복제돼도 원본은 하나라는 소유권을 입증할 수 있다. 진품 여부가 중요한 고가의 예술품부터 방송 장면이나 부동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지난해엔 NFT 거래 붐이 일었다. 최근엔 대기업까지 NFT 발행에 가세했다. 지난 8월 롯데홈쇼핑이 발행한 캐릭터 ‘벨리곰’ 멤버십 NFT는 캐릭터 팬덤과 롯데 계열사 관련 혜택을 기반으로 이틀간 9500개가 1초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8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게임업계도 게임 IP를 활용해 다양한 NFT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컴투스홀딩스의 플랫폼 자회사 컴투스플랫폼은 ‘멤버십 NFT 프로젝트’를 출시하고 오는 17일부터 게임 IP를 활용한 NFT 상품을 판매한다. 회사는 컴투스 그룹이 2001년 선보였던 고전 게임 ‘붕어빵 타이쿤’ IP의 디지털 자산을 활용해 제너레이티브 아트(컴퓨터 알고리즘으로 그림이나 디자인 등이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예술) NFT를 제작해 C2X NFT 마켓플레이스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회사는 붕어빵을 구워 판매하는 모바일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붕어빵을 한정 수량의 NFT로 판매한다. NFT 홀더는 자신의 NFT가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얼마나 희귀한지 여부를 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NFT 등급에 따라 실물 굿즈와 게임 쿠폰, 오프라인 프라이빗 홀더 행사 참여 등 혜택도 주어진다.
네오위즈도 모바일게임 ‘고양이와 스프’ IP를 활용한 프로필사진용(PFP) NFT 프로젝트를 선보인다고 지난 9월 밝혔다. PFP NFT는 소셜미디어(SNS)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할 수 있는 NFT를 의미한다. 처음엔 소수의 NFT 커뮤니티 등에서 경제력, NFT 커뮤니티 내 소속감을 나타내기 위해 PFP NFT를 사용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최근엔 일반인 사이에서도 개성을 나타내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 등도 구매하면서 주목받아 10억원을 넘는 가격에 거래됐던 NFT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AYC)’이 대표적이다.
네오위즈는 게임 내 고양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총 1930마리의 고양이와 UN에 가입된 193개국 국기가 결합한 NFT를 선보일 예정이다. 각기 다른 의상을 착용한 고양이의 모습은 GIF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커뮤니티나 SNS 등 채널에서 프로필로 사용할 수 있다. 게임상에서 인기를 끈 캐릭터를 게임 이용자가 직접 소유하고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위메이드와 크래프톤은 지난 5월 예술 분야 NFT 업체인 엑스바이블루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미술계 유명 작가의 작품을 NFT로 만드는 이 업체를 통해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NFT를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위메이드는 엑스바이블루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예술, 스포츠, 음악, 투자, 부동산, 패션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생성할 수 있는 NFT 플랫폼 ‘나일’을 선보일 예정이며, 크래프톤은 메타버스 서비스 ‘미글루’에서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생산해 돈을 벌 수 있도록 NFT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가 NFT를 발행하는 이유는 게임 이용자가 게임 내 다양한 캐릭터 IP를 수집하는 재미 요소를 콘텐츠에 더할 뿐 아니라 하나의 NFT 예술품을 소유한 홀더라는 소속감을 중심으로 게임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NFT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배경엔 투자가치뿐 아니라 아직 초기 단계의 IT 기술을 보유한 ‘얼리어답터’라는 일종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NFT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NFT를 보유하는 것이 자신의 경제력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도 NFT 흥행을 도왔다. 수억원 단위의 개성있는 BAYC 프로필 사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자신의 경제성과 취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됐기 때문이다. 홀더만이 참석할 수 있는 요트행사 등 커뮤니티도 MZ세대의 NFT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원숭이 NFT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트렌디하고 ‘힙한’, 혹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줬듯이, 자신의 게임 NFT를 보유하는 것을 유행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사의 욕망이 최근 트렌드에 반영됐다”라며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게임산업의 특성에 기대 NFT를 기반으로 더 크고 강력한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했다.
다만 국내 게임의 경우 NFT가 커뮤니티 형성이나 예술작품 공유 이상의 투자 가치를 지금 당장 가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임산업법이 사행성을 이유로 게임 내 재화의 현금화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는 지금 당장 국내에선 수익을 목표로 NFT를 발행하기보단, 소비자에게 새로운 재미 요소를 제공하며 팬덤을 넓히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컴투스홀딩스 관계자는 “랜덤박스와 유사하게 다양한 금붕어를 모으고 속성을 확인하는 유희 요소가 게임에 추가된 것이지 이 NFT로 인해 게임 내 생산성이 올라가는 등 게임 플레이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나만의 금붕어를 얻고 홀더만이 참석할 수 있는 행사에 갈 기회를 얻는 등 게임 외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라고 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게임업계는 NFT 발행에 있어 사행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시장의 이익보단 소비자 계층 확대 및 혜택 제공의 측면에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라며 “다만 돈버는(P2E)게임을 통해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는 등 해외에서의 수익 기회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업체가 계속 다양한 NFT 사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