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TSMC가 최근 기술 포럼을 열고, 자율주행 칩 수주전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에서 5세대 이동통신(5G)·자율주행 등 첨단 반도체 사용 빈도와 양이 늘어나는 만큼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열띤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테슬라를 포럼에 초청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테슬라 자율주행 칩을 만들고 있고, TSMC는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테슬라 자율주행 칩 수주를 노린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산호세에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2를 열고, 신기술과 사업 전략 등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퀄컴, 테슬라, AMD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고객사와 협력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2025년 5㎚, 2027년 1.4㎚ 파운드리 양산 계획을 밝혔다. 또 현재 전체 매출에서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모바일 칩 편중을 줄이고, 고성능 컴퓨팅(HPC), 자동차(오토모티브), 5G 분야 매출 비중을 전체 50%까지 늘린다는 계획도 전했다.
또 이날 포럼에서 관심을 모은 건 테슬라의 참가였다. 칸 부디라즈 테슬라 글로벌 공급망 관리 총괄 부사장이 퀄컴에 이어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시대의 도래, 두 갈래의 혁명’이라는 주제로 첫날 기조연설을 한 것이다. 그는 테슬라에서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전동화 등의 글로벌 공급 관리를 맡고 있고, 아시아·유럽·미주 지역에서 공급망 프로그램 관리, 공급업체 제조 엔지니어링을 담당한다. 테슬라에 사용하는 반도체 칩 공급 또한 부디라즈 부사장의 관할 업무다.
업계는 삼성 파운드리가 지난 2019년부터 테슬라의 3세대 완전자율주행시스템(FSD) 칩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삼성은 이 칩의 설계 일부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팹)의 14㎚ 공정에서 생산한다. 이어 삼성 파운드리는 테슬라 4세대 자율주행칩도 수주했다. 경기 화성캠퍼스의 7㎚ 공정 팹을 활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행사에 테슬라가 참여한 것은 두 회사의 끈끈한 관계를 보여준다”라고 했다.
다만 업계는 테슬라가 7㎚ 이하 자율주행 칩을 TSMC에 맡길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한다. 애초 4세대 칩도 개발 초기에는 TSMC와 협력해 왔다는 점과 5㎚ 공정 완성도에서 TSMC가 더 앞선다는 평가 등이 두루 고려된 것으로 여겨진다.
TSMC도 테슬라를 최근 기술 심포지엄에 초대하며 관계를 잇고 있다. TSMC 기술 심포지엄은 매년 6월 연례 주주총회 후 개최하는 최대 행사로, 지난 6월 북미를 시작으로 유럽과 중국, 대만 등에서 순차 개최되고 있다. 이 행사에 최근 피터 배넌 테슬라 저전압·실리콘엔지니어링 부사장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된다.
배넌 부사장은 애플과 인텔 등에서 컴퓨팅 시스템을 설계해 온 인물로, 애플 아이폰5에 사용된 32b(비트) ARM 설계 기반 중앙처리장치(CPU)의 수석 설계자로 유명하다. 현재 테슬라에서 자동차에 탑재하는 FSD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대만 정보기술(IT) 매체 디지타임스는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배넌 부사장의 존재는 테슬라가 첨단 전기차 칩 제조를 위해 (삼성에서) TSMC로 눈을 돌릴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TSMC는 테슬라 외에도 최근 자동차 회사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해당 행사에는 헤르베르트 디이스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도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디이스 CEO는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 웨이저자 TSMC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올리고 “폭스바겐의 차세대 자동차 반도체는 TSMC의 공장 중 하나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해당 반도체는 폭스바겐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와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공동 개발한 것으로 TSMC가 생산한다. 자동차 전자장비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제품군에 속한다.
자동차 반도체 시장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자동차용 반도체 성장률은 지난해 24.6%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17.8%, 내년 11.3%, 2024년 13.4%, 2025년 12.9%로 꾸준하게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따른 자동차용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500억달러(약 71조2800억원)에서 2025년 840억달러(약 119조76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자동차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 까다로운 제조·관리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류됐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이 크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 확산과 자율주행차의 등장으로 데이터 연산과 처리 기능을 수행하는 고성능 자동차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독일 아우디 등에 인포테인먼트 프로세서를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