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애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인터넷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의 입법을 놓고 여야가 책임 공방에 들어갔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안,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 등 총 7개에 달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황에서 여론이 험악해지자 양쪽 모두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특히 야당은 이재명 당 대표가 트위터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는 한 줄을 남기면서 당 차원의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기존에 공감대를 형성했던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 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해당 법안의 입법화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제대로 된 근거가 필요하다’며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를 공격하는가 하면, 정치권이 아닌 정부가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을 펼쳤다.

먼저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망 사용료 부과는 콘텐츠 창작자와 일반 국민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데, ISP는 근거를 가져오지 않아 갈등만 유발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 간 갈등을 정부가 개입해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국내 기업들이 인터넷 전용회선을 이용하면서 비용을 얼마나 부담하고 있는지,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서비스를 할 때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지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파악하고 있느냐”며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ISP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또 국회에서 입법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 과기정통부는 확인하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은 이에 “여러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고 유럽과 미국의 상황도 파악해야 한다”고 답했다.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을 대표 발의한 같은 당 윤영찬 의원, 공동 발의한 고민정 의원은 관련 질의를 하지 않았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망에 접속하는 모든 주체는 망 사용료를 내야 하고 누군가가 내지 않으면 그 비용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된다. 결국 개인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가 전부 부담하게 되는 것”이라며 “과거 ISP가 우월적 지위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가 더 우월하다. 사업자 간 계약이 성립되지 않는 시장 실패의 상황에서는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법안 추진 과정에서 임대차 3법처럼 집 없는 사람을 보호하려다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망 사용료 (의무화)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기대효과와 부작용을 감안해 잘 살펴달라”고 주문했다. 박완주 무소속 의원은 CP들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는 대신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논의 중인 것과 같이 기금을 구성해 망 고도화에 따른 부담을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특정 사업자 간 분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발생하는 망 고도화에 대한 비용을 누가 얼마씩 낼 거냐’를 논의해가면 된다”며 “유럽과 미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망 투자에 대해 플랫폼 기업이 기여하는 보편 서비스 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법제화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방위 여야 간사는 이날 서로에게 ‘입장을 정리하라’며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야당끼리 공청회를 해서 망 사용료를 받아낸다고 하다가 구글과 넷플릭스가 합동으로 공격하니 물러난 것 같다”고 말하자, 야당 간사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야당의 입장을 물어볼 게 아니라 여당 입장이 뭔지 물어보고 싶다”며 “서로 간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되묻는 식이었다.

유튜브코리아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재한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 입법 반대 광고. /인스타그램 캡처

구글이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의 입법을 막기 위한 총공세에 나서면서 여야의 기조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구글은 현재 자사가 후원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을 통해 해당 법안의 입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5일 오전 10시 15분 기준 이 운동에는 17만5458명이 참여했다. 구글은 이 밖에도 자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한국 인터넷 및 크리에이터(창작자) 생태계와 유튜브 운영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송출하고 있다.

여론이 동요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망 사용료 (의무화) 법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며 “잘 챙겨보겠다”고 썼다. 민주당 측은 이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법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관련 법안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구글은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이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망 중립성 원칙은 통신사 등 ISP가 인터넷에서 오가는 데이터 트래픽을 처리함에 있어서 내용, 유형, 기기 등의 요소와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구글은 이를 특정 사업자가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요금 등의 차등을 둘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거텀 아난드 구글 유튜브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부사장은 지난 4월 유튜브코리아 공식 블로그에 “발의된 법률 개정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추가적인 비용은 국내 유튜브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유튜브가 한국 크리에이터 생태계가 마땅히 누려야 할 투자를 이어가기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쓰기도 했다.

반면 ISP 측은 ‘망 중립성 원칙은 데이터 트래픽을 일방적으로 차단하거나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지 무상으로 전송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지난 3일(현지 시각)에도 성명을 발표하고 “구글 등 6곳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유발하고 있다. 증가하는 트래픽 양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서비스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업자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며 “인터넷 생태계의 모든 참여자는 경쟁시장에서 공정한 수익을 낼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글로벌 CP의 망 투자 분담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