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사용료는 인터넷을 이용해 돈을 더 벌고 싶어 하는 국내 통신사들이 만들어낸 ‘한국 인터넷’만의 이슈입니다.”
사단법인 오픈넷의 주장이다. 오픈넷은 구글을 핵심 후원자로 둔 인터넷 분야 비정부기구(NGO)로, 현재 국회의 ‘인터넷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 입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30일 오전 8시 25분 기준 이 운동에는 3만7747명이 참여했다. 오픈넷의 주장대로 망 사용료 의무화는 정말 국내에 한정된 문제일까.
◇ EU·美, 구글·넷플릭스 등 비용 분담해야
오픈넷의 주장과 달리 망 사용료 의무화는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5월 관련 법안 초안을 준비해 연말까지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 수석 부위원장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 트래픽을 생성해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망 연결성을 위한 투자에는 기여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며 “EU 집행위는 데이터 트래픽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을 기점으로 폭증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의 투자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놓고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했다.
베스타게르 부위원장이 언급한 ‘이들’은 구글, 넷플릭스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다. EU는 앞서 지난 2020년 넷플릭스 측에 트래픽 과다로 유럽에서 인터넷 정체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일정 기간 영상 화질과 음성 품질을 낮춰서 출력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유럽 통신업계는 EU 집행위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지난 26일(현지 시각)에는 독일 도이치텔레콤, 프랑스 오랑주, 스페인 텔레포니카를 비롯한 유럽 16개 통신사업자 최고경영자(CEO)가 플랫폼 기업의 망 투자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망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며 “가장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기업들이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섬유 케이블만 해도 올해 상반기에 가격이 거의 2배로 뛴 데다, 에너지 가격도 올라 예년처럼 망에 투자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유럽 통신사들은 그간 망 인프라 구축에 연간 500억유로(약 69조3900억원)가량을 투자해왔다.
유럽 통신사업자 CEO들은 “유럽은 이미 인터넷이 제공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쳐왔는데, 다가오는 메타버스 시대를 위해선 빠르게 힘을 키워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누구보다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며 유럽 망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기업들이 적정 수준에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직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한 망 중립성 원칙을 되살리는 데 난항을 겪으면서 플랫폼 기업이 기대하는 만큼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관할 기관인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총 5명의 위원이 표결을 통해 각종 규제의 존폐를 결정하는데, FCC는 현재 한 자리가 공석인 채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망 중립성 원칙은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인터넷에서 오가는 데이터 트래픽을 처리함에 있어서 내용, 유형, 기기 등의 요소와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더욱이 지금의 FCC는 공화당의 입김이 더 센 편이다. FCC는 유럽 통신사 CEO들이 공동 성명을 발표한 지난 26일, “그동안 미국과 EU는 고속망을 구축할 때 1990년대 다이얼업 모뎀 시절부터 고수해 온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왔다”며 “이런 방식은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야만 하는 지금 상황에선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FCC는 “빅테크 기업들은 고속 통신망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고, 미국과 EU 양쪽 모두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들이 망 구축·관리에 공정한 몫을 기여할 수 있도록 국제적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구글, 망 중립성 원칙 안 통하자 ‘창작자 피해’ 강조
구글이 최근 오픈넷을 통한 서명 운동을 비롯해 소셜미디어·옥외 광고를 통한 강도 높은 여론전에 돌입한 건 이 때문이다. 구글은 수년간 끓고 식기를 반복했던 망 사용료 의무화 논쟁에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반된다’는 논리로 맞서 왔는데, 각국이 ‘해당 원칙은 데이터 트래픽을 일방적으로 차단하거나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지 무상으로 전송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는 ISP 측 주장에 더 귀 기울이면서 창작자의 잠재적 피해를 앞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구글 등 콘텐츠제공사업자(CP)는 망 중립성 원칙을 특정 사업자가 많은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요금 등의 차등을 둘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반면 ISP 측은 트래픽 전송은 복지가 아닌 수익 창출에 목적이 있는 만큼 대가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면 ISP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통신업계 관계자는 “망 사용료는 CP가 콘텐츠 유통이라는 본연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영업 비용이다”라며 “콘텐츠 사업자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막대한 광고 및 이용료 수익을 수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따라서 망 사용료 의무화로 창작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구글 측 주장은 상대적 약자에게 부당하게 비용을 전가하겠다고 시인하는 꼴이다”라고 했다.
구글은 ‘구독자 1000명에 연간 누적 시청 시간 4000시간’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유튜버에게만 수익을 정산하고 있다. 이들 유튜버가 광고를 통해 얻는 수익 중 45%는 구글이 떼 간다. 해당 기준에 못 미치는 유튜버의 경우, 영상에 광고를 붙일 수는 있으나 모든 수익은 구글이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