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탈(脫)통신’에 전념하고 있다. 이미 국민(5160만명) 1인당 1.4건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가입하는 등 가입자 정체로 인한 시장 포화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기업의 미래 전략을 인공지능(AI), 메타버스, 플랫폼 등 디지털 전환으로 꼽았다.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잇따라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탈통신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탈통신 전략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 SKT·KT·LGU+, 탈통신에 미래 걸었다
22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CEO들은 최근 신경영 전략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통신 3사는 기존 가입자와 축적된 데이터, 영업 노하우 등을 기반으로 탈통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 등 콘텐츠와 인공지능(AI), 구독형 서비스, 메타버스, 도심항공교통(UAM) 등이 대표적이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지난 15일 자사의 뉴스룸에 올린 ‘다음 10년에 대한 고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최근 5년간 SKT의 전략이 새로운 산업에 활발히 진출하는 ‘다각화’였다면, 향후 10년의 성장 스토리는 ‘AI 대전환’이다”라며 “기업가치 제고를 가장 큰 목표이자 우선순위로 두고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SK텔레콤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구체적인 방법으로 AI를 꼽았다. SK텔레콤은 AI 서비스 ‘A.’(에이닷)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 VFX(시각특수효과) 기반 미디어 콘텐츠 제작소를 개관하기도 했다. 또 SK텔레콤, 오픈마켓 11번가는 아마존, 구글과 함께 T우주패스 구독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T우주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130만명을 돌파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는 음악 축제를 진행하기도 한다.
KT는 ‘디지코’(DIGICO·디지털 플랫폼 기업)를 모토로 미디어 콘텐츠와 클라우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KT의 탈통신 전략 결과의 하나다. 특히 최근 현대차와의 7500억원 규모의 주식 맞교환도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KT와 현대차는 2005년 텔레매틱스 모젠을 시작으로 블루링크까지 17년간 협업했다. 국토부 UAM 실증사업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는 두 기업은 2025년까지 UAM을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LG유플러스는 구독형 서비스 ‘유독’과 영유아 미디어 플랫폼 ‘아이들나라’ 등의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아이들나라’의 사업 확대 기대에 분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황현식 대표는 지난 15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2027년까지 비통신 매출 40%, 기업가치 12조원을 달성하겠다”며 “통신에서 플랫폼기업으로 사업을 전환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통신기반 라이프스타일(유독) ▲놀이(OTT·콘텐츠) ▲성장케어(아이들나라) ▲웹 3.0(메타버스·NFT)을 ‘4대 플랫폼’으로 확장시키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 기업가치 높이기 위해 통신 이외 분야로 확장
통신 3사가 디지털 전환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저평가받고 있는 기업가치가 있다. 안정된 망 인프라로 유무선 통신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기술 발전에 따른 수조원대의 신규 망 투자 비용 부담과 정부의 규제 이슈 등으로 주식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이동통신사 시가 총액은 SK텔레콤(017670)이 11조4669억원, KT(030200)가 9조3739억원, LG유플러스(032640) 4조9992억원이다. 통신 3사의 시가 총액을 합하면 약 25조8400억원이다.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인 네이버 시가 총액(36조908억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미 포화된 시장 환경도 문제다. 3세대 이동통신(3G), 4세대 이동통신(LTE)을 거쳐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에 진입했지만, 이미 5G 가입자 수가 2404만명을 넘어서는 등 정체기 맞고 있다. 값비싼 5G 통신요금에 통신 3사의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은 증가했지만, 최근 중간요금제와 e심 요금제가 도입되면서 수익이 크게 늘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높은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통신비 인하’ 유도를 추진하고 있어, 통신사 입장에서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실제 정부는 통신비 인하를 위해 통신 3사 중간요금제를 출시했음에도 여전히 부재중인 50~100GB 사이의 중간요금제 출시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통신사(MNO)와 알뜰폰(MVNO) 업계 간의 경쟁을 위해 오는 11월 알뜰폰 활성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신 3사 모두 올해 상반기 호실적에도 답답한 상황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통신 외 분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다만, 통신 3사의 탈통신 전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통신 외의 영역에 집중하다 자칫 본업인 통신 품질 향상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 이동통신 3사가 탈통신을 본격화한 사이 통화·인터넷 데이터 장애, 화재사고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내 통신사 한 고위 관계자는 “통신이 전통적인 내수 산업이고 해외 진출도 쉽지 않다”며 “2014년 단말기 유통법을 시작으로 지속된 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통신 3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힘든 상황이다”라고 했다. 그는 “오는 2027년 6G가 도입돼, 5G 서비스가 끝물일 때까지 5G 투자비를 뽑아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라며 “통신 3사의 탈통신 전략이 궁극적으로 6G 투자비에 대한 부담감에 시작된 얘기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