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4 분해 영상 /IFixit 캡처

최근 출시된 애플 아이폰14가 아이폰7 이후 가장 수리하기 쉬운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장 흔하게 수리하는 부품들을 더 쉽게 교체할 수 있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올해부터 ‘셀프 수리’가 가능해졌고 애플도 이를 여러 국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이폰 셀프 수리를 할 수 없다. 이를 허용하는 내용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21일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이폰14는 디스플레이, 뒷유리, 배터리 등을 나사 2개만 풀면 모두 교체할 수 있도록 내부 구조가 재설계됐다. 애플 스토어와 수리 업체 직원들은 물론 소비자들도 쉽게 부품을 교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 아이폰 시리즈나 다른 스마트폰 기기들은 접착제 위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오래된 스마트폰일수록 고치기 더 어렵다. 전자기기 수리업체인 아이픽스잇(iFixit)은 “이 정도면 애플이 아이폰14 내부를 완전히 재설계한 수준이다”라며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매우 큰 변화다”라고 밝혔다.

◇ 수리 쉽게 재설계한 아이폰14

아이폰 재설계는 미국 내에서 ‘수리할 권리(Right-to Repair)’를 보장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그동안 애플은 제품을 정식 서비스 센터에서만 수리하도록 하고, 사설 업체에서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면 그 이후에는 보증기간이 남아있더라도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받지 못하게 했다. 또 일부 부품에 문제가 있어도 해당 부품만 수리하는 게 아니라 전체를 교체하도록 해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제품 수리 권한을 통제하는 관행을 시정하라는 행정 명령을 하고,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이런 관행을 제재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애플도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연방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부터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시행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의 애플 스토어 주변에 새로 출시된 아이폰 14 구매 희망자들이 줄지어 있다. /연합뉴스

애플이 셀프서비스 수리(Self Service Repair)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다. 소비자들이나 사설 수리점이 애플 스토어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도구를 빌려 정품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수리 매뉴얼도 공개해 소비자가 애플의 수리 매뉴얼을 따라 제품을 고칠 수 있게 했다.

아이폰12와 아이폰13 시리즈, 아이폰SE 3세대에만 한정됐지만 지난달에는 맥북으로 대상 제품을 늘렸다. 부품군도 디스플레이·배터리 등에서 앞으로 점차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아이폰14가 재설계되면서 앞으로 출시되는 모델들도 이런 방식을 따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대상 국가도 미국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에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애플은 올해 하반기 유럽연합(EU) 지역에서도 애플 제품에 대한 셀프 수리 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EU 의회도 지난 2020년 11월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자제품이 고장 났을 때 손쉽게 수리를 받을 수 있게 해, 제품을 최대한 오래 쓰게 하자는 목적이다.

◇ 국회에 발 묶인 ‘수리할 권리’

국내에는 셀프 수리 서비스가 도입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관련 법안이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소관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의 검토 단계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자원 절약을 통해 탄소 중립 정책에도 기여하자는 취지였으나 관계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모두 해당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과도한 규제로 제조 사업자의 혁신동력을 저하시킨다’, ‘규제 대상 품목이 광범위해서 기업의 행정적·금전적 비용 상승이 우려된다’는 등의 지적이 있었다.

지난 16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애플 스토어 주변에 새로 출시된 아이폰 14를 구매하려는 방문자들이 줄지어 있다. /연합뉴스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애플이 셀프 수리를 국내에서 지원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지난 8일 공개한 아이폰14 시리즈의 한국 출시는 미국, 중국, 일본보다 3주나 느린 다음 달 7일로 예상된다. 한국이 3차 출시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특히 2차 출시국으로 분류된 말레이시아와 튀르키예 등 20여개 국가에 비해서도 출시가 늦어진 상황이다. 출시국 배정은 애플이 중요 우선순위 시장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환노위 심사에서 여론 형성이 미흡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며 “수리할 권리법의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법안 상정을 촉구하는 취지의 전시회를 국회에서 11월에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