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동참을 선언한 삼성전자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이 재생에너지 전력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따라 앞으로 삼성전자의 전력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내 재생에너지 역량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의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인텔 역시 전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비중을 80%로 높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미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대당 부품 숫자 10만개, 무게 180t에 달하는 ‘전기 먹는 하마’다. 장비 1대당 전력 사용량이 이전 세대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대비 약 10배인 1㎿(메가와트)에 달한다.

ASML EUV 노광장비 NXE 3400. /ASML 제공

EUV 장비는 네덜란드 장비 회사 ASML이 독점 생산한다. 다시 말해 초미세공정을 하려면 ASML의 EUV 장비를 사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뜻이다.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해당 장비가 탄소배출 저감에 나선 반도체 업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가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20년 6%쯤이다. 이 비중이 EUV 장비 도입으로 2025년이면 두 배 이상인 12.5%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3년 뒤면 인구 2100만명의 스리랑카보다 TSMC의 1년 전력사용량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TSMC는 EUV 장비를 약 80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 확보전에 뛰어든 삼성전자도 상황은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연간 전력 사용량이 국내 전체 소비량의 3%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EUV 장비 숫자는 TSMC보다 적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장비 확보에 직접 나서고 있어 앞으로 장비 숫자는 얼마든지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전력 사용량도 이에 비례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에 P3(평택3라인), P4, P5 등을 잇따라 증설하면서 반도체 생산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도 파운드리 2공장을 짓고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22%를 넘어 전력 확보에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한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를 다수 짓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OECD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에서 18.41TWh(테라와트시)의 전기를 사용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국내서 확보한 재생에너지는 30분의 1도 되지 않는 500GWh(기가와트시)에 불과했다.

대만 북부 신추과학단지 내 TSMC 팹12. 본사도 함께 있다. /TSMC 제공

삼성전자의 경쟁자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에 힘을 모으고 있다. TSMC는 지난 2020년 7월 RE100 동참을 선언하고, 관련 준비에 나서는 중이다. TSMC는 최대 고객인 애플과 페이스북의 2030년 탄소 중립 달성 목표에 따라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지난해 25%에서 2030년 40%로 높일 계획이다. 또 지난해 1.2GW(기가와트) 상당인 90만개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했다. TSMC는 대만 중부 창화(彰化)에 2.4GW 규모로 덴마크 풍력기업 오스테드가 개발 중인 해상풍력발전단지와도 20년간 전력을 공급받는 계약(PPA·전력구매계약)을 지난 2020년 체결했다. 2025년 완공하는 920㎿급 2단계 구간이다.

2040년 탄소 중립을 목표하고 있는 인텔의 경우 현재 전 세계 사업장의 전기 사용 80%를 재생에너지로 채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RE100을 달성했다. 케이빈 에스파지니 인텔 제조·공급망 운영 총괄 및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수석부사장은 “인텔은 나머지 20% 추가 달성을 위해 지역 규제 당국과 협력해 지역사회 내에서 재생가능한 전력 가용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라고 했다.

삼성전자 역시 RE100을 선언한 만큼,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개선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김수진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추진센터 부사장은 “(삼성전자가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해) 특별히 선호하는 방식을 말하긴 어렵지만, REC 구매, PPA, 직접 지분투자 등 다양한 옵션을 도입하고 있는 상태다”라며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해 최선을 다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나갈 것이다”라고 했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의 주요 공장인 미국 오레곤 몹3 D1X 클린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텔 제공

관건은 정부 의지와 지원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30.2%에서 21.5%로 8.7%포인트 낮췄다. 대신 원자력 발전 비중을 이전 계획보다 8.9%포인트 높여 32.8%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원전은 현재 재생에너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해 RE100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 대만 정부는 TSMC 지원을 위해 오스테드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생산한 전기의 송전 비용 90%를 대기로 했다. TSMC가 삼성전자보다 먼저 RE100을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싸다는 점도 문제다. REC 기준으로 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은 ㎾h(킬로와트시)당 43원으로, 중국·미국 1.2원과 비교해 40배쯤 높다. 발전 단가 역시 한국이 높은데, 한국의 태양광 발전단가(1㎾h당)는 116원으로, 중국 42원, 미국 48원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고객사들이 협력사에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하지 않으면 계약을 끊는다고 하는 상황에서 RE100 동참은 기업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것이다”라며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시장 강자로 남으려면 RE100 달성은 필수불가결하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에너지 비용에 대한 부담이 높아지면 제품 단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