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에 사는 박연수(여·42)씨는 최근 무선청소기와 자동먼지비움 거치대 위에 하얀 알갱이 같은 먼지를 발견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약간 끈적한 느낌도 있었다. 박씨는 물티슈로 먼지를 모두 닦아냈으나, 몇 시간 뒤 다시 앉은 하얀 먼지를 보고 의아했다. 집 안의 다른 곳에는 이런 먼지가 없었고, 유독 청소기 주변에만 먼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박씨는 또다시 먼지를 닦아 냈다. 하지만 청소기와 거치대 곳곳에 가득한 먼지를 모두 털어낼 수는 없었다.
박씨가 ‘먼지’로 안 하얀 물질은 사실 ‘벌레’였다. 30일 해충방제 기업 세스코에 따르면 청소기 주변에 생기는 하얀 먼지는 ‘곡물(가루)응애’로 불리는 해충일 가능성이 있다. 몸길이가 약 0.5㎜ 내외의 가루응애는 진드기의 일종으로 주로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 발생한다. 최적 생육 환경은 기온 23℃, 상대습도 85%다. 한 세대는 10일 정도로 번식력이 매우 높은 것도 특징이다. 보통은 건조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곡물류에 발생한다.
가루응애는 일반적으로 가정 내 가구류, 쌀통, 가전제품 등 다양한 장소에 나타날 수 있다. 가전 제조사들은 이런 가루응애가 청소기 내 자연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을 청소할 때, 청소기 안으로 응애가 함께 들어가 먼지봉투 안에서 번식한다고 설명한다. 주로 가정용으로 쓰이는 무선청소기와 먼지봉투에 먼지를 장시간 보관하는 자동먼지비움 거치대 특성상 무더위와 장마가 이어지는 여름철 끝에 가루응애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밀폐되지 않은 먼지봉투 내에서 번식한 가루응애가 청소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다.
제조사는 덥고 습한 환경만 만족하면 가루응애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 결함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용하다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그런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품 홈페이지나 사용설명서에는 가루응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는 찾아보기 어려워, 가루응애를 갑작스레 맞닥뜨린 소비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유독 먼지비움거치대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난다는 점도 소비자 불만이 커지는 부분이다. 가전업체 관계자는 “과거 유선청소기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여럿 있었다”고 했다.
제조사가 밝힌 예방책은 되도록 습도가 높은 곳에 청소기와 거치대를 두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 환기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 먼지봉투는 다 차지 않아도 여름철엔 한 달에 1번, 다른 계절엔 두 달에 1번 정도 교체하는 것이 좋다. 하루 한 번 이상 먼지 비움 기능을 사용하는 것도 벌레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일단 가루응애가 발생했다면 벌레를 없애야 더 많은 번식을 막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밝힌 해결 방법은 먼저 가루응애가 번식한 것으로 추정되는 먼지봉투를 폐기하고 제품 전체를 대형 비닐에 넣어 밀폐한다. 이어 5일간 상태를 유지하다 제품을 꺼낸 뒤 먼지봉투를 넣고, 15일간 5일 주기로 먼지봉투를 교체한다. 만일 이 방법으로도 가루응애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서비스센터에 연락하면 가져가 제품 전체를 분해해 세척하는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 설명이다. 다만 이 경우 집 주변 가루응애 발생 원인을 파악해 동시 제거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LG전자는 먼지비움 기능을 3회 실행한 후 기존 먼지봉투를 폐기하고, 제품 내부의 프리필터와 배기필터를 분리해 세척을 진행한다. 뒤이어 먼지봉투 설치부 주변과 제품을 소독용 티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이런 과정을 2~3일에 걸쳐 반복한다. 이런 소독 이후에 가루응애가 없을 때는 먼지봉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프리필터와 배기필터를 장착한 다음 제품을 다시 사용하면 되는데, 해당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센터 접수 후 분해 세척 조치를 받으면 된다.
소비자 단체 등에서는 무선청소기와 먼지비움거치대 주변에 가루응애가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에 제품 구매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는 제품 외장에 이런 사실을 알리는 스티커 등을 부착하는 등의 방법도 권하고 있다. 특히 최근 청소기들은 인테리어 효과를 노린 제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청소기를 거실 등에 내놓고 쓸 경우 가루응애와 같은 진드기로 인한 피해가 생길 수 있어 적극적인 소비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게 소비자 단체의 설명이다.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제품 결함이 아니더라도 가루응애 등 해충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제조사는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제품 구매 시 이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라며 “그래야 소비자가 구매를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수 있어 혹시 모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