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선 작은 세부사항도 놓쳐선 안 된다는 뜻의 이 관용구는 가상세계 구축에 특히 들어맞는다. 거슬리는 잡음 하나, 어색한 머리카락 하나를 놓치면 이 세계의 핵심인 현실감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네이버가 몰입형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몰입형 기술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기술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버추얼휴먼(가상인간), 디지털 트윈 등 기술이 대표적이다.
18일 기준 네이버 스타트업 양성조직 D2SF가 투자한 몰입형 기술 관련 스타트업은 총 14곳이다. 2017년 2곳(레티널, 딥픽셀), 2018년 1곳(포자랩스), 2020년 2곳(플라스크, 플라네타리움), 지난해 7곳(지이모션, 리콘랩스, 버추얼플로우, 픽셀리티게임즈, 가우디오랩, 튜닙, 엔닷라이트), 올해 2곳(리빌더AI, 모드하우스)에 각각 투자했다. 이들은 D2SF 전체 투자 중 2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우디오랩과 지이모션에는 지난달 후속 투자를 단행했다. 가우디오랩은 이용자의 움직임과 공간 특성을 고려해 입체적 음향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음향’ 기술과 음원을 고음질로 깨끗이 추출하는 ‘AI(인공지능) 음원 분리 기술'을 개발했다. 지이모션은 자체 개발한 시뮬레이션 엔진으로 ▲가상 피팅 ▲3D 패션 제작 ▲의상 디자인 솔루션을 만들었다.
네이버표 메타버스는 D2SF, 네이버랩스 등에서 끌어온 기술력을 제페토를 비롯한 카페·웹툰·스포츠 중계 등 기존 서비스에 접목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이를 위해선 이용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가상 공간에 현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게 필수적이다. 가우디오랩과 지이모션의 기술이 바로 여기에 쓰인다. 가상의 공간에 여럿이 모여 대화하는 상황에서 한 참여자의 마이크를 통해 강아지가 짖는 소리나 청소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면 몰입도가 깨지니 참여자의 목소리만 송출되도록 하고(가우디오랩), 참여자의 아바타가 입을 옷 등을 실제 제품과 똑같이 재현해 현실에서의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지이모션).
양상환 D2SF 리더는 전날 서초구 더에셋빌딩에서 이들의 기술을 소개하는 밋업 행사를 열고 “가우디오랩의 경우 네이버와 수년째 끈끈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며 “바이브, 나우와 영상 콘텐츠를 공동 개발하는 것은 물론 가우디오랩이 보유한 기술을 네이버의 다른 서비스에 접목하는 형태의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이모션에 대해서는 “네이버쇼핑, 제페토 등과 접점이 많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가상인간, 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네이버 서비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는 “네이버의 투자를 받은 뒤로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에 자동으로 음향을 입히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며 “현재 제페토 내 개인 창작자들이 만든 공간에 들어가 보면 아무런 소리가 나질 않는다. 이용자가 ‘정말로 이 공간에 방문했다’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아바타를 커피 머신 근처로 움직였을 때 커피 끓는 소리가 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이런 효과를 주기 위해 사람이 일일이 소리를 녹음해서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인공지능(AI)에게 영상이나 이미지 또는 텍스트를 보여줬을 때 그 상황에 맞는 소리를 자동으로 만들도록 하는 게 목표다”라고 했다.
인연수 지이모션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인간의 눈은 어떤 사물의 물성을 판단할 때 그것이 알루미늄인지 구리인지는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가죽이나 면, 린넨과 같은 의상과 관련된 재질일 경우엔 비교적 정확하게 분류한다”며 “여기서 착안해 여러 솔루션을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만든 의상에 시뮬레이션을 입혀 브랜드에 특화된 애니메이션 기반의 마케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맥킨지는 최근 11개국 3104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15개 산업 및 10개국의 448개 기업의 고위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전 세계 메타버스 관련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5조달러(약 6565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네이버는 이에 몰입형 기술 전반에 걸친 전략적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달 말까지 이 분야 신규 스타트업도 공개 모집하고 있다. 양 리더는 “(몰입형 기술 스타트업은) 네이버와 접점이 직관적으로 잡히는 곳”이라며 “D2SF와 접점 기술·사업 조직 미팅을 거쳐 최종 선정된 팀에는 네이버 제2사옥 내 전용 업무 공간, 네이버 클라우드 및 기술 솔루션 등을 제공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