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반도체 판매량이 1976년 첫 집계 이후 46년 만에 처음으로 전월 대비 후퇴했다.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판매가격 하락폭도 연초에 비해 커지는 중이다. 극심한 반도체 한파가 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는 투자를 조정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16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 6월 반도체 집적회로(IC) 판매량이 전월 대비 감소했다. 전월 대비 판매량이 감소한 것은 반도체 판매량을 집계하기 시작한 197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전 판매량 증가폭이 가장 작았던 때는 1985년 6월 1%였다. 다만 IC인사이츠는 정확한 판매 감소량을 밝히지 않았다.
업계는 통상적으로 6월을 반도체 성수기로 본다. 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분기 말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가전과 정보기술(IT) 기기 제조사는 매출이 늘어나는 시기에 앞서 반도체 구매량을 늘린다. 업계는 성수기에 나타난 판매량 감소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IC인사이츠는 “일반적으로 6월은 전월 대비 높은 한 자릿수, 또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다”고 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공급과잉과 재고 증가로 3분기 소비자용 D램 가격이 2분기와 비교해 13~18%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애초 이 회사는 3분기 가격 하락폭을 전분기 대비 8~13%쯤으로 봤는데, 이를 하향조정했다. 소비자용 D램은 셋톱박스, 스마트TV, 인공지능(AI) 스피커, 사물인터넷(IoT) 등에 사용하는 메모리반도체로, 고부가가치 제품은 아니지만 완제품 수요가 줄어드는 경향은 확인됐다. 4분기 가격 하락 전망 또한 종전 0~5%에서 3~8%로 확대됐다. 다만 트렌드포스는 D램 시장 비중이 높은 모바일 및 서버, PC용 D램 가격 전망은 내놓지 않았다.
IT 기기 수요 둔화는 또 다른 통계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은 7120만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 11.1% 감소했다. 감소폭은 2013년 2분기 이후 가장 컸다. 레노버 출하량이 전년 대비 12.7% 줄어든 1740만대, HP는 27%나 줄은 1340만대에 그쳤다. 델은 5% 위축된 1310만대, 에이서와 애플도 각각 전년 대비 출하량이 15%, 20% 감소했다.
반도체 기업도 시장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을 예상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9일(현지시각) 내놓은 예비 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2분기 매출이 이전 분기보다 19% 줄어든 67억달러로 예측했다. 이는 종전 전망치로 제시했던 81억달러를 하회하는 수치다. 특히 데스크톱과 랩톱(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포함한 게임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3% 줄어든 20억4000만달러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등) 거시경제 상황이 지속해서 판매량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돼, 고객사들과 재고 조정을 위한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D램 세계 3위 마이크론 역시 지난 9일(현지시각) 회계기준 4분기(6~8월) 매출 전망치를 내놨다. 마이크론은 애초 예측했던 68억~76억달러를 밑돌 것으로 공시했다. 마크 머피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장이 악화했다”라며 “(반도체 수요가) 훨씬 광범위하게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3분기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은 13조5427억원, SK하이닉스는 3조166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14.35%, 24.1% 떨어질 전망이다. D램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의 하락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 조정에도 나서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 9일 반도체 수요 악화를 이유로 내년 설비 투자를 줄이겠다고 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하반기 설비투자를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와 과학(CHIPs)법’은 투자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 정부는 이 법 도입으로 산업 등에 총 2800억달러를 지원하는데, 반도체 분야에만 520억달러를 쓴다. 마이크론은 법 통과 이후 2030년까지 미국에 4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퀄컴은 미국 파운드리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의 뉴욕 공장에서 2028년까지 74억달러의 반도체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