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애플리케이션(앱) 장터 사업자의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 위반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오는 16일부터 사실조사에 들어간다. 구글이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시행한 지 2개월 만이다. 구글의 인앱결제 수수료 부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콘텐츠 업계에선 방통위가 매번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는 지난 9일 구글·애플·원스토어 등 실태점검 대상 3개 앱 장터 사업자가 모두 제한적 조건을 부과해 통제하는 특정한 결제 방식(내부결제)만을 허용하고, 그 외 결제 방식(외부결제)을 사용하는 앱 개발사의 앱 등록·갱신을 거부하는 등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사실조사 결과 이들 사업자의 위반행위가 확인되면 시정명령, 과징금 부과 등 조처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방통위는 지난 4월 8일 구글의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이 특정한 결제 방식을 부당하게 강제하고 있다는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신고를 토대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한 뒤, 지난 5월 17일부터 앱 장터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점검에 착수했다. 현행법이 규정한 위반행위에는 ▲앱 장터 사업자가 특정한 결제 방식 외 다른 결제 방식을 사용하는 앱을 삭제·차단하거나 앱 장터 이용을 거부·제한하는 행위 ▲다른 결제 방식 사용을 기술적으로 제한하거나 절차적으로 어렵게 하는 행위 ▲결제 방식에 따라 이용 조건을 합리적 범위 내에서 다르게 설정하는 것을 제한하는 행위 ▲수수료·노출·검색·광고 또는 그밖에 경제적 이익 등에 대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을 부과하는 행위 등이 있다.
업계는 최근 구글과 카카오가 외부결제 허용을 두고 벌인 갈등이 이번 사실조사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방통위는 그간 앱 장터 입점 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한 뒤 사실조사를 통해 이에 대처하는 사후 조치를 원칙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구글은 지난 6월부터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시행하고, 그달 말까지 웹 결제 유도용 아웃링크를 유지한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를 중단했다. 카카오는 이에 최신 버전을 내려받을 수 있는 우회로를 이용자들에게 공지하며 구글과 맞서다, 방통위의 중재를 거쳐 ‘항복’했다. 구글은 카카오가 지난달 13일 아웃링크를 삭제한 직후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를 승인했다.
남궁훈 카카오 각자대표는 지난 4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구글이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시행한 이후 카카오톡 이모티콘 플러스의 신규 이용자 수가 기존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지난 5월 23일 구글 측에 지불해야 할 인앱결제 수수료를 반영해 카카오톡의 톡서랍 플러스와 이모티콘 플러스 가격을 인상했다. 구글은 앱 개발사들에 인앱결제 수수료로 결제액의 15~30%를 요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통위의 더딘 조치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통상 사실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3~6개월가량이 소요되는데, 그땐 이미 피해 규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한 음원 업체 관계자는 “프로모션 할인 비용 보전 및 서버 운영 비용을 고려하면 실제 수익은 마이너스(손해)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국내 사업자는 해외 사업자와의 불공정한 경쟁 환경으로 경영이 악화하고, 결국 사업 유지가 불가능해지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글 산하 음원 플랫폼인 유튜브뮤직의 경우 인앱결제 수수료 부담이 없어 소비자 가격을 미인상, 추가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신지영 멜론 음악정책그룹장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퍼플온 스튜디오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정확한 수치를 공개할 순 없지만, 멜론은 지난달 이용권 가격 인상 이후 신규 가입자 수가 줄기 시작했다”며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업계는 구글, 애플 등이 방통위의 시정명령을 이행할 가능성도 작게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서비스 지역에 동일하게 도입한 정책을 한국에서만 철회할 리 없다”며 “수수료율 인하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구글은 앞서 스마트폰 제조사에 자사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탑재를 강요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2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을 당시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한 적도 있다.
시민단체들은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인 만큼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방통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지난달 21일 관련 기자회견에서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방통위에 있다고 본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의무화 정책을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으면 방통위를 직무 유기로 고발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서울YMCA에 따르면 구글플레이(구글의 앱 장터)와 원스토어에 동시 입점해 있는 국내 주요 미디어·콘텐츠 앱 이용권(충전 방식 포함) 10개의 가격 차이는 평균 14.2%에 달한다. 서울YMCA 측은 이에 대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 대부분은 기기에 탑재된 구글플레이를 쓰기 때문에 타 앱 장터나 PC, 웹에서 결제하면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실에 따르면 구글의 인앱결제 의무화 여파로 국내 콘텐츠 이용자들은 연간 최대 3000억원을 추가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앱결제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유료 콘텐츠를 결제할 때 구글·애플 등 앱 장터 운영 업체가 만든 시스템에서 결제하는 방식. 구글·애플 등 앱 장터 업체는 결제 과정에서 수수료를 최대 30% 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