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대표 모바일 칩 엑시노스가 삼성전자 플래그십(최고급) 스마트폰에서 연거푸 채용이 불발될 것으로 보인다. 발열이나 성능 저하 등 품질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대체할 갤럭시 전용 칩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5일 전자 업계 및 해외 정보기술(IT) 매체 등에 따르면 다음 달 출시가 예정된 삼성전자 신형 폴더블(접었다 펴는)폰 갤럭시Z폴드4와 갤럭시Z플립4에는 퀄컴 스냅드래곤8+(플러스) 1세대가 장착된다. 이전 폴드3에는 스냅드래곤8 1세대, 플립3에는 스냅드래곤 888이 적용돼 성능 구분을 뒀던 것과 달리, 새 시리즈는 칩을 동일하게 적용해 성능 차이를 줄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삼성전자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퀄컴 칩과 회사 반도체 사업부가 개발한 엑시노스를 함께 장착해 왔다. 다만 폴더플폰의 경우 지난 2019년 최초 출시 이후 퀄컴 칩만 장착하고 있어 신제품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퀄컴 최신 모바일 칩 스냅드래곤 8+ 1세대. /퀄컴 제공

그런데 내년 초 출시가 유력한 갤럭시S23(가칭)에도 엑시노스가 장착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시장에 따라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을 병행 채용하던 그간의 제품 전략이 수정됐다는 것이다. 고성능을 요구하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엑시노스가 원하는 만큼의 품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IT 전문가로 알려진 궈밍지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갤럭시S22에서 70% 비중이었던 퀄컴이 S23에서는 유일한 공급업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삼성전자 4㎚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로 만든 엑시노스 2300(가칭)이 스냅드래곤과 경쟁이 되지 않아 갤럭시S23은 이(엑시노스)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갤럭시S22에 장착됐던 엑시노스2200의 경우에도 품질 문제가 있었다. 모바일 칩은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통신칩 등을 한 데 모은 것인데, 이들이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열이 과도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특히 요구 성능이 높은 게임을 구동할 때 이런 일이 빈번했다.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는 갤럭시S22에 게임최적화서비스(GOS)를 적용했으나, GOS가 사용자 동의 없이 성능을 임의로 낮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물론 당시 병행 채용된 퀄컴 스냅드래곤8 1세대도 유사한 문제가 나와 GOS 논란이 엑시노스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얘기도 있다.

삼성전자 엑시노스 2200. /삼성전자 제공

그 이전 제품인 엑시노스 2100 역시 성능이 경쟁 칩인 퀄컴 스냅드래곤 888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모바일 칩의 주요 평가 기준 중 하나인 전력효율 면에서 약점이 불거졌다. 이에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2200부터는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AMD와 협업을 하기도 했지만, 한계를 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엑시노스 최신형이 갤럭시S23에 채택되지 않을 경우 엑시노스를 퀄컴 스냅드래곤의 대항마로 키우려던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시작된 갤럭시S시리즈는 2012년 S3부터 엑시노스·스냅드래곤을 함께 채용했고, S5에서는 스냅드래곤만 적용했다. 이어 2015년 출시된 갤럭시S6는 엑시노스를 단독 적용했다. 이듬해 S7부터는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이 병행 사용됐다. 스냅드래곤 단독 장착은 8년 만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최신 모바일 칩인 엑시노스 2300의 개발을 완전히 접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IT 매체 샘모바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2300을 코드명 S5E9935로 개발 중이다. 독일 IT 전문 매체 윈퓨처의 롤랑 콴트 역시 엑시노스 2300이 삼성전자 3㎚ 파운드리 공정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내용을 자신의 SNS에 썼다. 삼성전자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가 2025년에 내놓을 것이라고 알려진 갤럭시 전용 칩 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노태문 삼성전자 MX(모바일 경험) 사업부장은 올해 초 직원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커스터마이징(맞춤형)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개발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이는 갤럭시S22에서 불거진 모바일 칩 품질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한 직원의 질문에 따른 것이다.

애플 아이폰 전용 칩 A15 바이오닉. /애플 제공

갤럭시 전용 칩은 삼성전자가 개발을 반도체 사업부에만 온전히 맡기지 않고, 설계 때부터 MX 사업부가 적극 참여해 갤럭시에 최적화된 칩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또 칩을 스마트폰에만 국한하지 않고, ‘갤럭시’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기기로 확장하는 것도 추진한다.

이는 애플 전략과 맞닿아 있다. 현재 애플은 스마트폰, 웨어러블, 태블릿PC, 노트북 등 IT 기기 전반에 자체 개발 칩을 얹어 거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갤럭시 역시 전용 칩으로 브랜드 신뢰와 완벽한 생태계 구성을 노린다고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엑시노스의 갤럭시 미채택은 단순히 엑시노스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엑시노스는 범용 스마트폰용 칩, 갤럭시는 전용 칩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준비 작업일 수 있다”라며 “칩 개발의 주도권이 반도체 사업부가 아니라 완제품 사업부로 옮겨지는 것으로 애플,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의 흐름과 유사한 전략을 삼성전자도 도입하는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