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억달러, 우리 돈으로 68조원을 지원하는 미국 반도체산업육성법안(반도체법)이 9부 능선을 넘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법의 최대 수혜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가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다만 미 정부와 의회는 반도체법으로 지원을 받는 기업의 중국 투자를 10년간 제한할 방침이어서 중국 사업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의 속내가 복잡하다.
22일 로이터통신 등 해외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 의회 상원은 지난 19일(현지 시각) 반도체법에 대한 절차 투표에서 찬성 64 대 반대 34로 법안을 가결했다. 절차 투표는 법안에 대한 표결 여부를 묻는 절차로, 찬성 60표 이상이 필요하다.
미국 반도체법은 상원과 하원이 각각 처리한 미국혁신경쟁법안, 미국경쟁법안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 내용만 간추린 것이다. 민주당과 조 바이든 행정부는 두 법안의 병합 심사가 지연되면서 법안 자체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원래 법안에서 520억달러 지원 부분만 따로 떼어 입법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공화당이 찬성하면서 법안 통과가 급물살을 탔다.
상원이 논의 절차를 갖기로 한 법안 초안에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을 지원하는 자금 외에도 반도체나 반도체 생산용 공구 제조에 대한 투자세액 공제율 25% 적용, 국제 보안통신 프로그램에 5억달러, 직업 훈련에 2억달러, 공공 무선 공급망 혁신에 15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음 주쯤 미 상하원에서 이 법안을 최종 통과시킬 경우 미국 인텔과 대만 TSMC를 비롯해 텍사스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가 가장 큰 수혜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중국 등 ‘우려국가(country of concem)’에 첨단 반도체 분야 투자나 공장 증설을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된 점은 반도체 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이하 칩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과 메모리반도체는 미 상무부 장관이 금지 품목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해당 사안을 논의 중에 있으나,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중을 고려하면 법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 법안은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더 많은 반도체 투자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드레일 조항은 대(對)중국 투자 증가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 반도체법에 담길 중국 관련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를 중국 시안에서 만들고 있고,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 우시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 각각 중국에서 반도체 패키징 공장과 파운드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법안 통과로 중국 내 사업이 흔들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해당 가드레일 조항은 이른바 ‘칩4′ 동맹 참여를 고심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도 상당한 압박이다. 칩4 동맹 실무회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미 상부무가 가드레일 조항 적용 기준을 마련하는 후속 작업을 맡을 수 있어서다.
당장 인텔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가드레일 조항은 미국 기업의 경쟁력까지도 약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을 법안에서 제외하기 위해 정계에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중국 내 시설에서 16㎚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인텔은 대변인 성명서를 통해 “인텔과 반도체 업계의 많은 회사는 글로벌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정책 입안자에 의견을 제공했다”라며 “이 복잡하고 중요한 입법은 모든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약 26조16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신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