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드라마 ‘스위트홈’ 등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제작 스튜디오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CJ ENM 스튜디오 센터’는 이런 수요를 충족하고 나아가 버추얼 프로덕션 등 신기술도 접목할 수 있는 미래형 제작 인프라를 목표로 구축했다. 콘테크, 즉 콘텐츠와 기술이 결합되는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시설이라고 자신한다.”
전성철 CJ ENM 커뮤니케이션 담당

국내 최대 규모 제작 인프라를 갖춘 ‘CJ ENM 스튜디오 센터’를 지난 5일 찾았다. 경기 파주시에 있는 CJ ENM 스튜디오 센터는 21만1570㎡(약 6만4000평) 면적에 조성된 최첨단 복합 스튜디오 단지다. 실내 스튜디오부터 촬영용 도로, 야외 세트장, 미술 센터 등을 모두 아우르는 ‘원스톱’ 제작 환경이 특징이다.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들고 마음껏 기념 촬영을 하거나 더위를 날릴 수 있는 놀이기구를 찾아 헤매다간 실망할 수 있다. 이곳은 방송, 영화, 음악, 공연, 애니를 망라하는 각양각색의 창작자가 모여 작품을 만드는 엄연한 업무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건물이든 발을 들이기 앞서 신원을 밝혀야 하는 것은 물론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까지 붙여야 할 만큼 보안이 철저하다. 서정필 CJ ENM 테크앤아트 사업부장도 “앞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일부 공간을 개방할 계획은 있지만, 대규모 테마파크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실내 스튜디오는 1600평형 1개 동, 800평형 6개 동, 500평형 5개 동으로 총 13개 동이 있다. 이중 1600평형 스튜디오는 국내 최대 규모로,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 및 음악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데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CJ ENM 산하 음악 방송 채널인 엠넷이 지난해 연말 이곳에서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를 촬영했다. CJ ENM의 또 다른 방송 채널인 tvN은 주말 드라마 ‘환혼’을 이곳 800평형 스튜디오에서 제작 중이다. CJ ENM 측은 “촬영 기간 세트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온도를 일정 수준으로 맞춰두고 있다”며 “현대극이 아닌 시대극이나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작품은 특성상 세트를 재활용하기 어렵지만, 문틀 등은 최대한 다시 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환혼에 등장하는 가구 등 소품은 한국 전통 문양을 재해석해 디자인했다. 극 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별자리 측정소’의 경우, 실존하는 천문대를 참고했다.

‘CJ ENM 스튜디오 센터’ 내 마련된 촬영용 4차선 도로. /CJ ENM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사이에는 총길이가 280m에 달하는 4차선 도로가 놓여 있다. 겉보기엔 일반 도로지만 촬영 시엔 이미지 합성용 그린 스크린(크로마키 벽체)과 함께 도심 한복판 등으로 변신한다. 스튜디오 단지 옆에는 자연 산지와 평지로 이뤄진 야외 세트장이 5만㎡(약 1만5000평) 규모로 펼쳐져 있다. 이곳은 단기 또는 중장기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크로마키 벽체를 활용해 옛 육조거리 등을 재현할 수 있다. CJ ENM 측은 “이 밖에 약 900평 규모의 상설 세트장도 마련했다. 여기엔 경찰서, 병원, 법원 등 고정형 세트를 설치했다”며 “세트를 비롯한 소품, 의상, 분장 등 통합적인 미술 지원이 가능한 미술 센터도 단지 안쪽에 300평 규모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처럼 ‘없는 게 없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CJ ENM 스튜디오 센터지만, 자랑거리는 따로 있다. 바로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다.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는 LED 스크린만 5대를 갖춘 특수 촬영 전용 스튜디오다. 이중 핵심은 ‘메인 월’로 불리는 타원형 스크린이다. 지름 20m, 길이 7.3m의 이 스크린은 해외 촬영지 혹은 가상의 공간을 스튜디오 안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천장용 LED 스크린과 이동형 LED 스크린 두 대가 감싸고 있다. 김상엽 CJ ENM 콘텐츠 R&D(연구개발) 센터장은 “이제까지는 창작자들이 촬영 장소에 크로마키 벽체를 설치하고, 나중에 배경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최종 영상물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배우도 제작진도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버추얼 프로덕션은 이후에 합성할 배경을 미리 LED 화면에 띄워놓고 그 앞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고 그 장면을 그대로 촬영해서 최종 영상을 만드는 걸 말한다. 관련 업계에선 일종의 숙원 사업으로 불렸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이다”라고 설명했다.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접목한 스튜디오는 ‘버추얼 스튜디오’로도 불린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콘텐츠 제작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해당 기술이 초기 단계에 있어 적용 사례는 드물다. 김 센터장은 “앞으로 혼합현실(XR), 메타버스 등 다양한 분야에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모든 촬영을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진행하는 전용 콘텐츠도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길이 20m, 높이 3.6m의 일자형 스크린인 ‘서브 월’의 경우, 광고나 홈쇼핑 영상을 촬영할 때 용이하게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에서 촬영용 배경 데모를 시연하는 모습. /CJ ENM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에서 촬영용 배경 데모를 시연하는 모습. /박수현 기자

CJ ENM은 총 2000억원을 투입해 CJ ENM 스튜디오 센터를 설립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하는 콘텐츠에 한해서만 공간 및 기술을 지원할 예정이다. 외부 제작사에 임대하는 방안은 여러 인프라를 더 구축한 뒤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서 사업부장은 “아직은 이곳에서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 개수가 S급 드라마 기준으로 연간 12편에 불과하다. A급 드라마 기준으로는 연간 20편이다”라며 “부지를 추가로 확보한 뒤, 제작 환경이 지금보다 여유로워지면 그때 외부 임대를 고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