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있다. 바로 이안 굿펠로우의 이직이다. 구글의 인공지능(AI) 사업을 이끌었던 굿펠로우는 2019년 애플로 이직한 뒤 ‘애플카’ 등 미래 주요 사업을 맡아왔다. 그런 그가 애플이 ‘주 3회 사무실 근무’ 방침을 내걸자마자 전면 재택근무를 보장하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으로 돌아간 것. 애플은 이후 사무실 복귀 추진을 중단했다.
# 같은 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직급이 높을수록 사무실에 나와 존재감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대면 소통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이유였다. 머스크는 이메일에서 “테슬라는 지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원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내가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지 않았으면 테슬라는 일찍이 파산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전환 이후 근무 체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무실 출근을 밀어붙이면 인재들이 경쟁사로 빠져나가고, 재택근무를 유지하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물론 재택근무가 생산성 저하를 유발한다는 근거는 없다. 올해 초 한국노동연구원이 30인 이상 기업 62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3.6%는 ‘생산성에 차이가 없다’고 응답했다.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답한 비율은 18.7%였다.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달 발간한 ‘비대면 시대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일·생활균형’ 보고서에서 오히려 기업이 근로자보다 재택근무의 생산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업은 재택 근로를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과 자기 계발,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제도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근로자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사이트 잡코리아가 직장인 41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시대 근무 환경 변화’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긍정적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86.9%에 달했다.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이직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본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 2월 데이터 분석기업 퀄트릭스가 발간한 ‘2022 퀄트릭스 직원 경험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18세 이상 한국 정규직 근로자 1031명 중 18%는 회사가 사무실 전면 복귀를 요구하면 이직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많은 경영진은 재택근무를 ‘독’으로 확신한다. 대면 소통의 부재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도 지난 2020년 공개적으로 재택근무 반대론을 펼친 바 있다. 당시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엔 그 어떤 장점도 없다”며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려면 구성원끼리 둘러앉아 토론해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하면 서로 모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지난 1월 간담회에서 “2018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가운데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체제가 되면서 게임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게임사들은 연이은 재택근무로 신작을 내놓지 못하면서 예년보다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트릭스터M’ ‘블레이드앤소울2′ ‘아이온2′ 출시 일정을 미룬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연간 매출이 전년 대비 4% 뒷걸음질 쳤다. 같은 기간 넥슨의 매출은 6% 감소했다. 넷마블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거뒀으나, 북미 소셜카지노 게임사 ‘스핀엑스’ 실적이 새로 더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기업은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체제를 구축하며 실험에 나서고 있다. 선두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섰다. 다음 달부터 네이버는 ‘커넥티드 워크’를, 카카오는 ‘메타버스 근무제’를 각각 실시한다. 네이버는 6개월에 한 번씩 ‘주 3일 출근’과 ‘전면 재택근무’를 두고 직원이 자유롭게 선택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카카오는 근무 장소를 자유롭게 하되 주 1회 오프라인 만남과 음성채널 활용을 권장한다.
해외 근무를 허용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라인플러스는 다음 달부터 직원들이 한국과 시차가 4시간 내외인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라인플러스 측은 “직무·조직·개인별로 근무 형태가 다양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전사 공통 근무제도는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며 “대신 임직원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도록 관련 규칙을 보강한다”고 했다. 규칙에는 ▲원격 근무지에 업무 집중 환경 조성 ▲업무 공유 및 피드백 활성화 ▲원활한 협업을 위한 근무 시간 정립·공유 등을 담았다.
단, 하이브리드 근무제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우선 재택근무를 둘러싼 직원 간 인식의 차이가 있다. 한 국내 업계 관계자는 “관리자급에선 여전히 ‘재택근무=노는 것’이란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다”라며 “수시로 업무 진척 상황을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상급자도 있다”고 전했다. 새 근무제 도입을 앞둔 카카오도 최근 같은 이유로 홍역을 치렀다. 근태 관리를 위해 음성채널에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넣었다가 ‘파놉티콘(소수의 감시자로 다수의 죄수를 관리하기 위해 고안된 원형 감옥)’이란 비난을 받은 것이다. 카카오는 이후 해당 조항을 권고 사항으로 수정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근무제를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보안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지난해 발표한 ‘사이버 위협 전망’ 보고서에서 재택근무자 PC 공격을 통한 기업 내부 침입 시도 비율 증가를 국내외 사이버보안 주요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IBM시큐리티가 지난해 데이터 유출 사고가 발생한 기업 500곳의 손실 규모를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도입한 기업 피해 규모는 그렇지 않은 기업의 피해액보다 평균 100만달러(약 13억원) 이상 더 컸다.
내부에서 기술을 유출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부 소속 직원이 재택근무 중 대량의 전자 기밀문서에 접근한 흔적을 발견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해당 직원은 PC 화면에 보안자료를 띄워놓고 스마트폰으로 수백건을 촬영한 것이 확인됐다. 삼성전자는 이후 반도체(DS) 부문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