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 딜라이트 샵에 네오 QLED 8K가 전시된 모습.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주요 부품 공급업체에 구매 중단을 통보했다. 코로나19로 늘었던 제품 수요가 다시 줄면서 재고 물량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우려로 제품 판매가 예상을 밑돌면서 부품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22일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DSCC)과 외신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재고회전일수는 평균 94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예년과 비교해 2주 정도 길다. 재고회전일수는 보유 중인 재고가 매출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제조사는 평균 70~80일, 유통회사는 평균 50~60일의 재고회전일수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부품 공급업체에 스마트폰과 TV에 사용하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패키징 부품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16일 “삼성전자가 재고 급증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로 신규 조달 주문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라며 “여러 부품 공급업체에 부품과 부품 출하를 몇 주간 지연 또는 축소할 것을 요청했다”라고 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 직원이 비스포크 무풍에어컨 갤러리를 생산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물가 상승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전자제품 구매력이 감소했고, 결국 업계 1위 삼성전자의 재고도 늘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로 소비가 늘어난 생활가전과 TV, 스마트폰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제품에서 특히 심각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TV와 생활가전에 사용하는 디스플레이 패널에 대한 신규 구매 주문을 중단하는 동시에 기존에 주문한 물량도 취소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최근 중국 최대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인 BOE와 CSOT(차이나스타), HKC 등에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 부품 재고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따라붙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LCD 패널은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지난해 중반까지 공급 부족 현상을 겪었다. 이에 따라 LCD 제조업체들은 공급을 크게 늘렸지만 수요가 계속되면서 가격도 올랐다. 하지만 대면활동이 재개되면서 LCD 패널 수요가 하락했고 결국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올해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디스플레이 노트북용 OLED 생산라인.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전자의 부품 구매 중단 조치는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삼성전자의 요청을 받은 부품업체들이 생산 속도를 단계적으로 늦추는 데 시간이 필요한 만큼 부품 공급 과잉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DSCC는 “올해 2분기 이내에 재고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라며 “부품업체 입장에서 재고 대응에 나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어난 재고를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재고가 쌓이는 현상은 유통업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최대 가전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의 올해 1분기 재고회전일수가 74일로 평균(50~60일)을 훌쩍 넘었다”라고 보도했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도 지난 3월 기준 재고회전일수가 57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WSJ는 전했다. 아마존은 재고량을 평균 30~40일 정도로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부품 주문을 중단하면서 재고자산은 올해 하반기부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재고자산은 47조59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4% 늘었다. 같은 기간 27.7% 증가한 LG전자와 비교해 2배 넘는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세트(완성품) 업체들이 재고를 이유로 부품 조달을 연기하면 재고자산이 줄어들겠지만, 그 부담이 고스란히 부품 업체들로 넘어갈 수 있다”라며 “부품 업체도 적극적인 감산과 재고 관리에 나서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