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콘텐츠 기업들의 이용료 인상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글이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장터에서 인앱결제를 하지 않는 앱을 삭제하기로 한 시점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소비자 부담을 우려해 구글 등 앱마켓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인앱결제는 소비자가 이미 내려받은 앱에서 유료 콘텐츠를 구매할 때 앱마켓 사업자가 개발한 내부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구글은 그동안 게임 앱에서만 인앱결제를 강제했으나, 지난해 대상을 모든 앱으로 확대한다고 밝히고 올해 4월부터 이를 따르지 않는 앱들의 업데이트를 막고 있다. 오는 6월 1일부터는 이런 앱들을 구글플레이에서 아예 삭제할 방침이다.
18일 네이버에 따르면 네이버웹툰은 오는 23일부터 안드로이드 앱에서 구매하는 쿠키 가격을 개당 100원에서 120원으로 20% 인상한다. 주문형 비디오(VOD) 플랫폼 ‘시리즈온’의 캐시 가격도 안드로이드 앱에서 구매할 경우 100캐시당 100원에서 110원으로 올린다. 단, PC와 모바일 웹에서는 쿠키와 캐시 모두 기존 가격으로 판매한다.
쿠키와 캐시는 네이버웹툰과 시리즈온에서 유료 콘텐츠를 구매할 때 사용하는 전용 화폐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들 화폐 가격 인상에 대해 “인앱결제 수수료 인상과 글로벌 사업 확대, 지식재산권(IP) 사업 고도화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원스토어가 운영하는 웹툰·웹소설 플랫폼 원스토리가 이용권 가격을 인상한다. 원스토어는 지난 2일 “6월 1일부터 앱마켓별 수수료 정책에 따라 원스토리 캐쉬(원스토리 이용권) 가격이 앱 마켓별로 상이해질 수 있다”고 공지했다. 오름폭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원스토어는 현재 애플 앱스토어용 앱에서 기존보다 20% 높은 가격에 이용권을 판매하고 있어, 구글플레이용 앱의 이용권 가격도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
웨이브·시즌·티빙 등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들은 지난달 구글플레이용 앱을 통해 구매하는 이용권 금액을 일제히 15% 수준으로 올렸다. 음원 플랫폼 중에서는 플로와 바이브가 스트리밍 서비스 가격을 각각 14%, 16%씩 인상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앱마켓 사업자로 앱 개발사 입장에서는 구글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플랫폼들은 이용료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이탈을 막기 위해 구글의 인앱결제 방식으로 구매할 때만 가격이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MOIBA)에 따르면 2020년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국내 점유율은 66.5%로 가장 높다. 애플 앱스토어는 21.5%의 점유율로 그 뒤를 잇는다.
구글 인앱결제발(發) 콘텐츠 이용료 인상으로 국내 소비자들은 연간 수천억원을 더 부담할 전망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무소속) 의원은 지난 3일 이미 이용료를 올렸거나 그럴 계획인 국내 OTT와 음원 플랫폼들을 대상으로 자체 분석한 결과,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는 월간활성이용자(MAU) 1255만여명이 앞으로 연간 최대 2300억원을 추가로 내게 됐다고 밝혔다.
반면 구글은 올해 국내에서 4100억원가량의 추가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영식(국민의힘) 의원실은 2020년 MOIBA에서 모바일 콘텐츠 산업 관련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를 토대로 전체 시장 규모를 산출해 올해 비(非)게임 콘텐츠 앱 개발사가 구글에 낼 수수료를 8331억원으로 추산했다. 외부결제 방식을 사용할 경우 내야 하는 수수료 4193억원에 인앱결제 강제에 따른 추가 수수료 4138억원을 더한 값이다.
다만 이는 인앱결제 수수료율을 최고 30%로 계산했을 때 나온 값이어서, 앱 개발사가 실제로 지불할 수수료는 이보다 적을 가능성이 크다. 구글의 수수료 인하 프로모션인 ‘미디어 경험 프로그램’에 따라 수수료를 6%만 내는 앱도 있다. 의원실도 자료에서 “수수료율 인하를 적용받는 앱으로 증가액이 낮아질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방통위는 지난 3월부터 개정 전기통신사업법과 그 시행령을 시행하고 있다. 앱마켓 사업자가 지금처럼 제3자 결제 방식을 허용토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구글이 이를 우회하는 새 정책을 발표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은 국회가 지난해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을 통과시킨 뒤, 앱 개발사들에 ‘인앱 3자 결제’를 추가 선택지로 제시했다. 인앱 3자 결제는 인앱결제 대비 최고 수수료율이 최대 4%포인트 낮은 대신 결제대행 업체(PG), 카드사 등에도 수수료를 따로 내야 하는 구조다. 수수료의 총합을 따지면 인앱결제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방통위는 뒤늦게 “위법 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지만 구글은 별다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실태점검을 통해 구글을 압박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7일부터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등 관련 법령에 대한 앱마켓 사업자의 이행 상황과 금지행위 위반 여부 전반에 대한 실태점검을 실시해 위반행위가 인정되면 사실조사로 전환,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조사를 거쳐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앱마켓 사업자는 매출액의 최대 2%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현재로서는 구글이 방통위의 제재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구글이 방통위의 처분을 미뤄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같이 할 경우,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내리기까지 걸리는 수년 동안 인앱결제가 표준 결제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앱 개발사 입장에선 당장 앱을 플레이스토어에 남겨 두기 위해 인앱결제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YMCA는 “감독기관의 피해 접수, 사실조사 착수 여부 검토, 사실조사 착수, 자료 제출 요구, 자료 미제출 시 이행강제금 부과 등등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소비자와 앱마켓 이용 사업자 피해는 점점 커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