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파라마운트플러스가 티빙과 손잡고 6월 중 한국에 상륙한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국내 OTT 플랫폼과 손잡고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넷플릭스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국내 OTT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파라마운트글로벌은 지난 3일(현지 시각)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6월 중 한국과 영국에서 파라마운트플러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파라마운트글로벌은 미국의 대표적인 콘텐츠 기업 바이아컴CBS의 후신이다. 미국 3대 지상파 방송사 CBS를 비롯해 쇼타임, 파라마운트픽처스, MTV, 플루토TV 등을 거느리고 있다.
로버트 바키시 파라마운트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은 파라마운트플러스의 아시아 첫 무대가 될 것이다”라며 “내년에는 인도에 진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파라마운트플러스는 파라마운트글로벌이 지난해 출시한 OTT 플랫폼이다. 올해 1분기까지 약 400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파라마운트플러스는 2024년까지 구독자 1억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올해 하반기부터 이탈리아·독일·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 시장에 진출한다.
파라마운트플러스의 콘텐츠는 CBS와 파라마운트픽처스의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한다. 워너브러더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유니버셜스튜디오, 컬럼비아픽처스와 함께 헐리우드 5대 메이저 스튜디오로 꼽히는 파라마운트픽처스는 ‘대부’ ‘타이타닉’ ‘사랑과 영혼’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브레이브 하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인터스텔라’ 등을 포함해 스핀오프 제작이 가능한 시리즈물인 ‘스타트렉’ ‘미션 임파서블’ ‘13일의 금요일’ ‘클로버필드’ ‘트랜스포머’ ‘잭 리처’ 등의 IP를 보유하고 있다.
파라마운트글로벌은 지난해 티빙의 모회사인 CJ ENM과 전방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파라마운트플러스의 한국 진출을 가시화했다. 당시 양사는 티빙에 파라마운트플러스 전용 브랜드관을 마련하고, 파라마운트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겠다고 밝혔다. 양사는 앞으로 CJ ENM의 IP를 활용한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고, 파라마운트플러스와 플루토TV를 통해 CJ ENM의 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소개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파라마운트글로벌은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기존 플랫폼 구독자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는 이유로 CJ ENM과의 협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OTT 플랫폼이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넷플릭스에 이어 지난해엔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가 한국에 상륙했고, 티빙 외에 웨이브, 쿠팡플레이, 왓챠 등 토종 플랫폼도 계속해서 세를 늘리고 있다. 미국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의 HBO맥스와 아마존의 아마존프라임도 한국에서 곧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면서 OTT 플랫폼 간 제로섬 게임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거리두기 등 방역조치 해제 이후 시장이 둔화되면서, 앞으론 서로 기존 구독자를 두고 경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애플리케이션(앱)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지난해 9월부터 1200만명대를 유지하다가 올해 4월 1153만명으로 줄었다. 2위인 웨이브도 같은 기간 490만명에서 433만명으로 이용자가 감소했다.
국내 업계는 넷플릭스의 대응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파라마운트글로벌과 CJ ENM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이르면 하반기 한국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WBD도 국내 플랫폼과의 제휴를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를 제외한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이용자들에게 특화된 IP를 많이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국내 플랫폼과 손을 잡으면 이런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BD는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와 케이블 채널 HBO를 통해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DC코믹스 영화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 ‘밴드오브브라더스’ ‘왕좌의 게임’ ‘유포리아’ ‘섹스앤더시티’ 등 드라마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합병한 디스커버리는 디스커버리 채널, HGTV, 푸드네트워크, 애니멀플래닛, OWN 등의 모회사다.
미국에서는 HBO맥스가 조만간 넷플릭스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장점유율 기준 미국 OTT 업계 2위는 아마존프라임, 3위는 디즈니플러스와 훌루가 나란히 차지하고 있지만 증가율은 HBO맥스가 이들보다 높기 때문이다. HBO맥스는 넷플릭스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유료 구독자 감소를 경험한 지난 1분기에도 전분기 대비 300만명, 전년 동기 대비 1280만명 늘어난 가입자 7680만명을 기록했다.
HBO맥스는 가격 경쟁력에서도 넷플릭스보다 우위에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HBO맥스의 스탠더드 요금은 월 14.99달러로 넷플릭스의 프리미엄 요금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넷플릭스는 이후 프리미엄 요금을 19.99달러로 올렸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 겸 CEO는 지난달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복잡한 광고제보다는 단순한 구독제를 선호하지만, 그 이상으로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을 지지한다”며 수익성 개선을 위해 광고 요금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아울러 계정 공유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남미 지역 너머로 확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넷플릭스는 현재 2억명이 넘는 가입자 중 절반 이상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계정을 빌려주고 있다고 파악 중이다.
하지만 두 가지 정책 모두 이용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업계에선 ‘넷플릭스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중에서도 국내 OTT 플랫폼들은 넷플릭스에서 이탈하는 구독자들을 흡수하는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이용자 간 계정 공유를 허락하면서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었다”라며 “구독료 인상으로 이미 눈총을 받은 상황에서 계정을 공유하는 데에도 요금을 부과하면 결과는 부정적일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