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 /로이터 연합뉴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올해 1분기 견조한 메모리 수요에 힘입어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한 가운데 미국 인텔은 올해 1분기에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인텔의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 공략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은 28일(현지 시각) 올해 1분기 매출 184억달러(약 23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한 수치다. 인텔은 이번 실적 부진이 소비자 및 교육용 PC 수요 둔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PC 반도체를 담당하는 클라이언트 컴퓨팅 부문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 줄어들면서 93억달러(약 11조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인텔은 회사에 반도체 부품 수급난이 2024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분간 지금과 같은 부진한 성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제조 장비 부족이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라며 “결국 공급 측면에서도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은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올해 1분기 역대 최고 매출인 26조8700억원을 거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1.3% 증가한 수치다.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고부가 제품인 서버용 제품 비중을 늘리면서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다.

인텔의 파운드리 생산라인 전경. /인텔 제공

올해 1분기 두 회사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인텔의 파운드리 시장 공략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메모리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빼앗긴 인텔 입장에서는 그동안 집중했던 중앙처리장치(CPU)에서 벗어나 파운드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1968년 설립 이후 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하던 인텔은 1980년대 중반 NEC,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에 D램 시장을 빼앗겼고, 결국 D램 사업을 접었다. 이후 PC용 CPU 시장에 집중하면서 다시 반도체 왕좌를 되찾았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이 PC에서 모바일과 클라우드 중심으로 전환하는 상황에서도 인텔은 시장의 흐름에 맞춰 미세 공정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초미세 공정을 요구하지 않는 PC용 CPU에만 집중하면서 초미세 공정 기술이 중요한 모바일 반도체 시장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지난 2018년부터 미세 공정으로 분류되는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을 시작했다. 인텔은 여전히 7㎚ 이하 양산 경험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반도체 수급난이 겹치면서 인텔은 부품 수급난에 빠졌고, 결국 삼성전자에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해 삼성전자에게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 1위 자리를 3년 만에 빼앗겼다.

반도체 웨이퍼 위에 새겨진 회로. /인텔 제공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하고 최근 1년간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살아남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승산이 없는 메모리 대신 기술 경쟁이 가능한 파운드리 시장에 다시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와 오하이오에 각각 200억달러(약 25조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만들고 2025년부터 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에는 이스라엘 파운드리 업체 타워세미컨덕터를 54억달러(약 6조원)에 인수했다.

인텔은 초미세공정 양산 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기는 계획을 공개하는 등 10㎚ 이하 시장에서 선발주자인 삼성전자와 TSMC보다 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1일 인텔은 2024년 하반기 양산을 계획하던 2㎚ 공정은 2024년 초, 2025년으로 잡았던 1.8㎚ 공정 양산은 2024년 하반기에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2025년 2㎚ 공정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TSMC와 삼성전자를 1년 앞서는 것이다.

시장은 인텔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텔이 올해 초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를 인수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퀄컴과 아마존을 파운드리 고객사로 영입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다만 인텔의 초미세공정 양산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하다. 회로 선폭이 예리한 초미세공정은 1㎚를 줄일 때마다 공정 난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그런데 7㎚ 이하 칩 양산 경험이 부족한 인텔이 삼성전자와 TSMC에 앞서 2㎚ 공정 양산을 시작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