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2022년을 ‘글로벌 원년’으로 선포하고 사용자 10억명 돌파, 매출 15조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미래 주역으로 지목된 손자 회사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에서 분사한 네이버제트와 크림이 그 주인공이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네이버제트는 지난해 전년 대비 339% 증가한 3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전년 대비 56%, 487% 늘어난 295억원, 1129억원이다.
네이버제트는 전 세계 3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운영한다. 제페토는 구찌, 나이키, 스타벅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유수 기업을 하나둘 세계관에 합류시키며 업계 1위 로블록스의 아성을 노리고 있다. 지난달 기준 글로벌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약 2000만명으로, 아시아 기업이 개발한 메타버스 플랫폼 중 가장 많다.
시장은 네이버가 제페토에 암호화폐를 접목,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2018년 일본 라인을 통해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하고 자체 생태계인 ‘링크체인’과 암호화폐 ‘링크’를 출시했는데, 이를 제페토에 도입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링크가 제페토 내 통화로 자리 잡으면 플랫폼 내 여러 아이템을 대체불가능한토큰(NFT)화해 판매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라인의 자회사인 라인넥스트는 올해 상반기 중 NFT 플랫폼인 ‘도시’를 180개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도시는 전 세계 기업과 개인 창작자가 NFT를 발행하고, 서로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다.
최수연 네이버 신임 대표도 지난 13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제페토를 중심으로 게임, 메타버스, 가상현실(VR) 분야에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페토 입장에서 글로벌 전체 시장을 놓고 어떤 플랫폼과 힘을 합치는 게 가장 좋은지는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다”라며 꼭 라인의 플랫폼과 연계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같은 날 라인의 또 다른 자회사인 LVC주식회사가 일본에 NFT 마켓 ‘라인 NFT’를 정식 출시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로선 라인과의 합작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라인은 그간 NFT 마켓을 디지털 자산 관리 지갑인 ‘라인 비트맥스 월렛’에서 베타 서비스로 운영해 왔다. 라인은 NFT 마켓을 통해 링크의 실사용처도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 내 6000개 이상의 온라인 가맹점에서 링크 결제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라인은 지난달 간편결제 서비스인 ‘라인페이’에도 링크를 시범 탑재한 바 있다.
네이버제트는 제페토를 키우기 위해 굵직한 투자도 단행했다. 매출에 비해 손실액이 막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네이버제트는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파트너로부터 2236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뒤 메타버스 인공지능(AI) 솔루션 개발 기업 ‘머플’과 메타버스 플랫폼 콘텐츠 개발 기업 ‘메타스페이스컴퍼니’, 음원콘텐츠 개발 기업 ‘숫자쏭컴퍼니’ 등에 26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네이버제트는 이 밖에도 미국 게임개발사 ‘브레이브터틀스’와 싱가포르 메타버스 서비스 업체인 ‘굿갱 랩스’, 국내 게임 개발사 ‘루노소프트’와 설립한 합작법인 ‘주식회사 피노키오’ 등의 지분을 인수하며 약 65억원을 썼다.
크림은 지난해 매출 33억원, 영업손실 595억원을 기록했다. 스니커즈 전문 리셀(resell·한정판 제품 재판매) 플랫폼인 크림은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통해 처음으로 실적을 공시했다.
업계에서는 크림이 빠르게 수익성을 개선할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림은 2020년 설립 이후 1년 만인 지난해 7000억원대의 거래액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준 MAU는 300만명이다. 크림은 오는 21일부터 구매자에게 중개수수료도 부과할 방침이다.
크림도 넉넉한 실탄을 기반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크림은 지난해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 미래에셋캐피탈 등으로부터 1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모회사인 스노우로부터 570억원의 운영자금도 대여하고 있다. 이제까지 크림이 지분을 투자한 해외 기업들에는 태국 리셀업체 ‘사솜’과 일본 1위 한정판 거래 플랫폼 스니커덩크를 운영하는 ‘소다’, 싱가포르 가전제품 중고 거래 플랫폼 리벨로를 운영하는 ‘키스타 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CJ 출신인 김형섭 대표가 이끄는 이커머스 스타트업 ‘컬쳐앤커머스’와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시그먼트를 운영하는 ‘팹’의 지분을 각각 14.91%, 70%씩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는 ‘MZ세대 맞춤’ 스노우를 앞세워 라인의 뒤를 이을 또 하나의 거대 포트폴리오 육성에 나선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를 위해 스노우에 출자한 금액만 총 5970억원에 달한다. 스노우는 네이버제트, 크림 외에도 MZ세대 공략 일환으로 영어학습 서비스 ‘케이크’,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잼라이브’, 이모티콘 제작 서비스 ‘스티컬리’ 등을 선보여왔다.
일각에선 네이버가 스노우의 영업손실을 메우기 위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네이버는 ‘믿을 만한 투자’란 입장이다. 증권가에서도 스노우 자회사들의 숨은 가치가 재평가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네이버의 시가총액이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예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웹툰, 스노우 등이 포함된 네이버의 콘텐츠 매출은 올해도 60%가 넘는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스노우는 지난해 전년 대비 47% 줄어든 57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