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G 가입자 추이

5세대 이동통신(5G)이 가계통신비 인상의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4인 가구가 5G 110GB 요금제에 가입했다면 가계통신비만 30만원에 달한다. 4인 가구 전기료가 월 5만원 수준인데 통신비는 6배나 비싸다.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비만 낮춰도 물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동통신사의 5G 요금제는 데이터별 사용량이 세분화되지 않아 소비자 선택권이 넓지도 않다. 이동통신 3사가 비싼 요금제로 자신들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요금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가계통신비 부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SK텔레콤 을지로 사옥, KT 광화문 사옥, LG유플러스 용산 사옥 전경.

◇ '10GB vs 110GB' 극과 극 요금제 선택 기로

2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국내 5G 가입자 수는 2020년 11월 상용화 이후 1년 11개월 만에 1000만명을 넘어선 뒤 지난해 11월 2000만명을 넘어섰다. 월평균 70만명 안팎의 가입자가 더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르면 연내 3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동통신 3사는 5G 상용화에 힘입어 곳간을 쌓고 있다. 영업이익은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2019년 3조864억원이었던 이동통신 3사의 연간 영업이익 합계는 2020년 3조3509억원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 4조2401억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합산 1조원을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국내 5G 가입자들은 월 10GB와 110GB를 쓸 수 있는 극과 극 요금제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1인당 평균 트래픽을 고려하면 월 10GB를 아껴 쓰거나, 매월 80GB 이상의 데이터를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이용자 데이터 소모량을 고려하지 않고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고 시민단체 등에서 지적하는 배경이다.

실제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는 월 10GB를 제공하는 5G 요금제를 기본으로 한다. 다음 상위 요금제에서는 110GB를 제공한다. 가격은 SK텔레콤과 KT가 10GB 기준 월 5만5000원, 110GB는 6만9000원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월 5만5000원에 12GB를 제공하며, 150GB 요금제를 7만5000원으로 책정했다.

이용자들은 월 1만~2만원의 비용을 두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장기 가입자 등의 경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단순 계산으로 4인 가구 기준 최대 8만원을 더 지출해야 한다. SK텔레콤과 KT 가입자 4인이 10GB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하면 총 22만2000원, 110GB 요금제를 이용하면 27만6000원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각각 22만2000원, 30만원이다. 4인 가구 기준 월 전기료가 5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6배까지 차이가 난다.

시민단체들은 이동통신사들이 5G 요금제 인하 여력이 충분한 데도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통신사들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무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증가하고 있다는 게 근거다. SK텔레콤의 ARPU는 지난해 4분기 기준 3만740원으로, 전년보다 1.6% 늘었고, KT는 2.3% 증가한 3만2356원이다. 다만 LG유플러스는 5G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하며 1.7% 감소한 3만323원을 기록했다. 증권업계는 5G 가입자를 등에 업은 무선 ARPU를 이동통신사들의 호실적 배경으로 꼽고 있다.

통신업계는 지난해 온라인 전용 5G 요금제를 내놓으며 여론 진화에 나섰지만,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기존 5G 요금제와 마찬가지로 중간 요금제가 없어서다. 여기에 이를 활용하면 가족결합 할인, 월 25% 요금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참여연대, 민생경제연구소,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시민모임 등 소비자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 공공성 강화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등 통신 관련 과제를 위한 정책을 새 정부 인수위에 제안했다. /참여연대

◇ 정부도 5G 가계통신부 부담 '주범' 지목

정부도 통신 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가계 부담 경감 노력으로 휴대전화료 물가지수가 하락 추세를 보고 있지만, 1인당 데이터 사용량과 5G 가입자 수 증가로 지출 증가가 예상돼서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달 초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며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 노력으로 휴대전화료 물가지수는 장기적으로는 하락 추세에 있으나 1인당 데이터 사용량과 5G가입자 증가 등 지출 증가 요인이 지속적으로 예상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통신사 간 경쟁을 유도하고 듀얼심 지원으로 소비자 선택권도 제고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오는 9월 eSIM 서비스 상용화를 위해 상반기 중 관련 제도를 정비한다. 또 청년 데이터 부담을 줄이기 위해 5월 말까지 취업사이트 데이터 무과금, 데이터 추가 제공 등 청년 맞춤형 데이터 판촉을 지원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현재 대책들은 5G 이용자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며, 통신비만 낮춰도 서민들의 부담을 낮추는 것은 물론, 물가 상승 압박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LTE 요금제 월 3만~4만원을 쓰다가 5G 요금제에 비싼 단말기까지 더해지니 월 10만원가량을 지출하면서 물가 상승에 악영향을 끼쳤다"라며 "통신 공공성을 강화하고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가해야 한다"라고 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도 "현대인에게 통신은 필수적이고 보편적 서비스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소비자의 부담을 완화하고 선택권이 강화될 수 있도록 새 정부에 지속해서 요구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국내 통신업계 관계자는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통신사도 소비자 친화적인 다양한 서비스 및 요금제 출시 노력을 지속해왔다"라며 "통신사가 자유로운 경쟁과 혁신, 투자를 통해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이를 소비자 혜택으로 돌려주는 선순환 구조가 되도록 산업발전 및 진흥을 위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