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공개한 업계 최선단 14나노 DDR5 D램.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풍토병화(엔데믹)’에 접어들면서 비대면 일상이 끝나면 데스크톱, 노트북 등 소비자 PC와 가전제품 등의 판매 감소세가 나타나 반도체 업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반면 오히려 늘어나는 데이터 소비로 반도체 시장이 굳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18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PC 출하량은 크롬북 판매의 급격한 감소로 전년 동기 대비 7.3% 줄어든 7750만대를 기록했다. 가트너는 “PC 시장의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붐은 끝났다”라고 시장을 진단했다.

윌리엄 스타인 트루이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PC 등 가전제품 수요로 반도체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PC는 물론 가전제품, 이동통신 등 완제품 업체의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타인 애널리스트는 인텔, AMD, 엔비디아 등 PC 산업군 주요 비(非)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PC용 D램 가격은 올해 들어 2분기 연속 하락세가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1분기 PC용 D램 평균가를 DDR4는 전분기 대비 5~10%, DDR5는 3~8% 하락했다고 밝혔다. 2분기에는 DDR4와 DDR5 모두 3~8%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동시에 PC나 가전제품에 널리 쓰이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수요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큰 매출처라는 점에서 시장 상황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업황에 따라 회사 실적이 크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체 매출 237조원 가운데 메모리 분야가 23.4%에 달했다. 반도체 부문만 놓고 보면 8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회사 매출의 96%를 D램(71%)과 낸드플래시(25%)에 의존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2세대 DDR5 D램 모습. /SK하이닉스 제공

반면 D램 등 메모리 반도체가 PC에 비해 모바일이나 서버용 시장 비중이 월등하다는 점에서 PC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부정 전망은 의미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D램은 시장 수요가 모바일(스마트폰)이 40%로 가장 크고, 서버가 30~40%, PC는 10% 수준으로 파악된다.

황민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PC 등) 수요 약세가 (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1년 전부터 4분기 연속 틀렸다”라며 “2분기 D램 가격은 보합이거나 소폭 오를 것이다”라고 했다. 황 애널리스트는 그 근거로 메모리 반도체 미세공정의 진척이 느리다는 점을 꼽았다. 미세공정 전환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날 여지가 줄었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 엔데믹뿐 아니라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경기 둔화가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데이터 소비는 늘어 서버용 D램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봤다.

중국의 대규모 디지털 인프라 투자 사업인 동수서산(東數西算)으로 메모리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동수서산은 중국 동(東)부 지역의 데이터(數)를 서(西)부로 옮겨와 처리(算)하는 프로젝트로, 경제가 발달한 중국 동부의 컴퓨터 자원을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부에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동수서산 프로젝트에 따라 중국은 8개 지역을 국가 컴퓨팅 허브로 삼고, 10개의 국가 데이터 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8개 국가 컴퓨팅 허브 중 4개는 경제가 발달한 지역에, 나머지 4개는 낙후된 지역에 세운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D램 업황은 올 2분기부터 상승세로 전환할 것이다”라며 “서버, 노트북 등 반도체 전방 수요는 여전히 강하고, 미국 공급관리협회 제조업 재고순환 지표가 상승세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는 등 주요 경기 지표의 개선이 전망된다”고 했다.